경제일반

[백진용이 만난 사람]“창업은 힘든 도전이지만 가치 있는 일…사람 잘 이해하는 게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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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쓰레기통 `네프론' 개발 김정빈 수퍼빈 대표

◇김정빈 수퍼빈 대표(오른쪽)가 지난 17일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신세희기자

춘천시 등 전국 지자체에 자판기 형태로 설치돼 캔이나 페트병을 투입하면 상품가치가 있는 재활용품인지 아닌지를 척척 가려내 주는 기계 '네프론'이 화제다. 일명 '똑똑한 쓰레기통', '쓰레기가 돈이 되는 기계'로 불리는 네프론은 스타트업 '수퍼빈'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순환 자원 회수 로봇이다. 네프론은 쓰레기가 소중한 자원이 되고, 문화도 되고, 놀이도 된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며 재활용 쓰레기 플랫폼은 물론 재활용 문화를 한 차원 높여 가고 있다. 네프론을 만든 춘천 출신 김정빈 수퍼빈 대표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 사회에 도움이 되는 가치 실현에 나선 그의 얘기를 들어봤다.

매출 5,000억 CEO에서 '스타트업' 도전장

힘들 때 사업하는 이유 되돌아볼 수 있도록

돈보다 스스로 꿈꾸는게 무엇인지 정의해야

네프론은 '도시광산 사업'을 하는 AI로봇

춘천 비롯 전국 30개 지자체 보급·운영 중

순환자원 부가가치 높이기 위해 사업 확대

■강원도와는 어떤 인연이 있는지=“춘천에서 태어났다. 이후 아버지 직장을 따라 서울로 이사를 했지만 효자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한림대(경제학과 92학번)에서 대학생활을 했다. 특히 학사 과정을 3년 만에 수석으로 졸업했는데 강원일보에서 제 졸업을 취재해 소개해 줬던 기억이 난다. 그때 '훌륭한 경영인이 되고 싶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렇게 경영인으로 만나게 돼 감회가 남다르다. 또 3년 만의 조기 졸업 경력이 하버드케네디스쿨에서 석사를 하고, 코넬대에서 경제학 박사과정(마치지는 못했다고 했다)을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철강회사 CEO를 지낸 것으로 아는데 창업을 하게 된 계기는=“38세부터 약 5년간 매출 5,000억원 규모의 회사 CEO로 지내다 보니 제가 이해하고 있던 세상과는 다른 세상의 모습을 볼 기회가 많았다. CEO에서 물러나고 다른 회사의 CEO 제안을 받는 과정에서 월급쟁이 CEO는 한 번이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우리 다음 세대에 자신의 꿈을 꿀 수 있는 대안은 창업이 될 수도 있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선배 세대의 창업은 다음 세대와 어울리기에는 결이 너무 달라 직접 창업을 결심하고 2015년 '수퍼빈'으로 스타트업에 뛰어들었다.”

■창업하면서 특별히 재활용에 주목한 이유는=“특별한 사명감이나 의무감이 있지는 않았다. 작은 호기심과 그동안 경험한 인연들이 나를 이곳으로 이끈 것 같다. 이전에 근무했던 철강회사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분리수거하는 재활용품들이 정말 재활용될까 하는 의구심도 드는 반면 일부 재활용품은 실제 시장에서 돈으로 거래되는 상품이었다. 그래서 팔릴 수 있는 재활용품을 기계로 수거하고 이를 판매해 얻은 수익을 재활용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보상해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네프론'에 대해 소개해 달라=“실제 분리수거된 재활용품들의 재활용 비율은 생각보다 높지 않다. 이는 재활용 소재의 가치를 확보하려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까다로운 선별과 수집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선별과 수집이 상대적으로 잘 이뤄지는 사례가 있는데 아파트단지다. 주민들이 분리 배출하는 것을 경비아저씨들이 다시 한번 선별한다. 네프론은 경비아저씨들의 역할을 하도록 설계된 로보틱스 제품이다.”

■구체적으로 네프론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가=“재활용폐기물들을 인공지능의 판단에 따라 수거 또는 거부하고, 수거된 것은 압착 후 종류별로 수집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리고 일련의 과정을 거쳐 판매된 재활용품 수입은 네프론 사용자들에게 현금 등으로 보상해 주게 된다. 즉, 네프론은 '도시광산(Urban mining)' 사업을 하는 로봇이라고 보면 된다. 도시에서 자원화가 가능한 순환자원을 수거하고 이를 자원화하는 과정의 첨병인 셈이다. 이름이 네프론인 것은 지인의 아이디어다. 우리 신체에서 노폐물을 걸러내는 콩팥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기본단위인 '네프론'에서 이름을 땄다.”

■네프론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 같다=“춘천시 등 현재 전국 약 30개 지자체에 지난 2년간 100여대가 보급돼 운영 중이다. 올해 1분기에만 60대의 추가 주문이 몰려 있어 네프론이 우리 사회에 적응해 가는 단계다. '올 연말까지, 내년까지 몇 대를 설치하겠다' 이렇게 목표를 정하지는 않는다. 수요자의 요청이 있으면 단순히 설치에 그치는 게 아니라 지역 내 순환자원시장 상황과 지역 주민을 위한 자체 운반 서비스 등 세세한 부분까지 조사해 결정한다.”

■수익을 사용자들에 현금으로 돌려주는데, 어떤 방식인가=“사용자들이 네프론 자판기 화면에서 시작 버튼을 누르고 재활용할 페트병이나 캔 등을 넣으면 네프론의 인공지능이 판독해 재활용이 가능한 순환자원은 수용하고 아닐 경우 거부한다. 순환자원으로 수용할 경우 건당 10원 내외(지역별로, 품목별로 차이)의 포인트를 사용자 휴대전화번호에 적립해 준다. 그리고 사용자는 2,000점이 넘으면 언제든 저희 홈페이지에서 누적된 포인트를 자신의 은행 계좌로 입금 요청하면 된다. 현재 매달 1,000만원 내외의 금액을 사용자들에게 돌려주고 있다. 재원은 네프론이 수거한 순환자원의 판매 금액으로 마련한다.”

■네프론 사용자 가운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례는=“시범사업을 하던 시절 추운 겨울이었다. 경기도 과천의 사용자 한 분이 네프론을 운영해 줘 고맙다며 네프론 투입구에 과일을 놓고 가신 것과 경북 구미의 사용자가 네프론에 적립한 포인트로 손수레를 사게 됐다고 고마워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자신이 넣으려고 모아 온 캔과 페트병을 친구들에게 빼앗겨 울고 있던 초등학생에게 저희가 모아온 것을 넣어 포인트를 적립해 주고 달랬던 적도 있다.”

■수퍼빈이 계획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해달라=“순환자원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직접 Reprocessing(재가공) 사업까지 영역을 확대한다. 이는 수거된 순환자원이 석유, 나무, 철광석 등 천연자원을 대체할 정도의 수준까지 가공돼야 지구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재활용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네프론을 통한 수거 품목을 캔과 페트병 이외에 좀 더 자원화의 가능성이 높은 품목들로 확장하려 한다.”

■스타트업 등 창업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이것만은 얘기해 주고 싶은 게 있다면=“창업은 힘든 도전이지만 가치 있는 도전이다. 창업을 할 때는 돈보다 스스로가 꿈꾸는 게 무엇인가를 잘 정의해 둬야 한다. 힘들 때 자기가 사업을 하는 이유를 되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창업을 할 때는 우리 사회와 구성원인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 창업은 결국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원하는 가치를 제품과 서비스로 설명하는 일이다.”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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