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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봉]위기의 한반도, 국민의 안위가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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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석 사회부장

2017년 상영된 영화 남한산성의 백미는 인조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예조판서 김상헌과 이조판서 최명길의 '말의 전쟁'이다.

척화파 김상헌과 주화파 최명길의 말에는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고 금방이라도 툭 끊어질 듯한 팽팽한 긴장감이 스크린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죽는 것이 진정으로 사는 것, 오랑캐 발밑의 임금은 모실 수도, 지켜볼 수도 없습니다.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고 삶을 구걸하느니 사직을 위해 죽는 것이 신의 뜻이옵니다”(김상헌). “전하, 만백성과 함께 죽음을 각오하지 마시옵소서… 무엇이 임금이옵니까? 오랑캐의 발밑을 기어서라도 제 나라 백성이 살아서 걸어갈 길을 열어줄 수 있는 자만이 비로소 신하와 백성이 마음으로 따를 수 있는 임금이옵니다”(최명길).

병자호란은 17세기 초 동아시아 패권국 명나라와 떠오르는 신흥 강대국 청나라 사이의 대결 구도 속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명과 청 사이에서 조선이 명에 대한 사대를 택하면서 휘말리게 된 비극이다. 주변 강대국 사이에서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 한반도의 상황은 병자호란 당시나 그 이전이나 지금이나 한 치의 변함이 없다.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강대국 사이에 낄 수밖에 없는 한반도의 숙명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연구의 대표적인 학자인 명지대 한명기 교수는 강대국 사이에 파워 시프트(권력 이동)가 일어날 때 중간에 끼여 있는 국가는 어김없이 위기를 맞게 된다고 역설한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청일전쟁 모두 강대국 간의 힘의 교체 시기에 발생했다는 것이다. 강대국끼리 갈등 상황이 생기면 약소국은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고 두 강대국 사이에서 최대한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살아남는다. 한명기 교수는 한 강의에서 “임진왜란, 병자호란, 청일전쟁 당시의 지배층은 전략적이지 못했고, 외부 정세에도 어두웠고, 부정부패에 휘말려 안팎으로 힘을 쓸 수 없었다는 공통점을 보여준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라고 강조했다.

미국과 중국 G2의 경쟁과 대결 구도가 격화되고 있고 북한까지 '벼랑 끝 전술'로 도발하고 있는 최근 한반도 현실이 역사 속 상황의 데자뷰를 불러일으킨다. 우리나라는 2016년 사드 배치 문제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홍역을 치렀다. 미국의 요청에 따라 사드를 배치하자 중국이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경제 보복을 해 왔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에 이어 홍콩 국가보안법을 둘러싸고 첨예한 갈등을 빚으면서 한국은 미국이냐, 중국이냐를 놓고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내몰리고 있고 앞으로 이런 상황은 더욱 잦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까지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등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무력시위를 이어가고 있어 외교적 셈법이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정부는 '국민의 안위'를 최우선 가치로 두고 '실리' '실용'의 관점에서 전략적 대응을 해 나가야 한다. 이와 함께 북한이 핵 실험, 미사일 발사 등 돌발행동을 할 때마다 강원도 접경지역은 좌불안석이다. 국방개혁 2.0, 아프리카돼지열병, 코로나19로 접경지역 경제가 완전히 얼어붙은 상황에서 남북 대치 국면까지 이어지자 '어떻게 사느냐'는 아우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인 접경지역에 대한 정부의 보다 세심한 지원이 절실한 대목이다.

'병자호란은 1637년 1월30일, 47일 만에 끝이 났다. 전쟁 후 50만의 조선인이 청으로 끌려갔다.' 영화 남한산성이 엔딩으로 향해 가면서 화면에 뜨는 자막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백성을 살리는 게 최우선'이라는 최명길의 실용 노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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