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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잊혀질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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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미영 변호사 본보 독자위원

누구나 잊고 싶은 부끄러운 과거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잊고 싶어도 자신의 기억 속에서 그 과거를 지워버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부끄러운 과거를 자신의 기억 속에서 지우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타인의 기억 속에서는 지워지기를 바란다. 이렇게 남이 나의 과거를 잊어버리기를 바라는 것이 권리로서 보장되는 것인가가 바로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의 문제다.

과거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리는 정보가 많았다. 그런데 오늘날 빅데이터(Big Data) 시대에는 누구나 인터넷 검색엔진을 통해 과거의 정보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 내가 잊고 싶은 과거, 남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린 나의 과거를 인터넷은 여전히 그리고 온전히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잊혀질 권리'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유럽연합(EU) 최고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의 판결 이후다. 스페인의 한 변호사가 2010년 구글(Google) 검색을 통해 1998년 자신의 채무내역과 재산 경매에 대한 신문기사를 발견하고 그 기사와 검색결과 노출의 삭제를 요청한 사건에서 유럽사법재판소는 “구글 검색 결과에 링크된 해당 웹페이지의 정보가 합법적인 경우에도 링크를 삭제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해 처음으로 '잊혀질 권리'를 인정했다.

'잊혀질 권리'는 인터넷에서 본인과 관련된 정보가 적법하게 공개됐다고 하더라도 이후 시간이 흘러 공익적인 정보로서의 가치가 상실되고 오히려 사생활 침해 또는 명예 훼손과 같은 불이익이 발생하는 경우 이러한 정보에 대한 타인의 접근을 차단하거나 삭제할 수 있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에 대해 헌법상 명문 규정은 없지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규정 또는 국민주권원리와 민주주의원리 등을 이념적 기초로 하는 독자적 기본권으로서 헌법에 명시되지 아니한 기본권이라고 판단했고, 대법원은 개인정보에 관해 권리의 기초가 인격권에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개인정보보호법'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일정요건하에 개인정보의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나의 잊혀질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보호되는 권리는 그로 인해 제한되는 표현의 자유와 충돌되는 경우가 빈번해 그 보호의 범위와 수준이 항상 논란이 된다. 프라이버시권을 우선해야 하는지 아니면 표현의 자유를 우선해야 하는지의 문제는 쉽게 가치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개인정보를 공개함으로써 침해되는 인격적 법익과 자유롭게 개인정보를 공개하는 표현행위로서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 이익이 충돌하는 경우에는 개인정보의 공공성, 개인정보 이용의 필요성, 개인정보 이용으로 침해되는 이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비공개 이익(인격권)과 공개 이익(표현의 자유)을 비교 형량해 어느 쪽 이익이 더욱 우월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에 따라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으나, 여전히 양 이익을 비교 형량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결국 잊혀질 권리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공론화 및 사법부의 판결 축적을 통해 '잊혀질 권리'의 구체적 보호 범위와 수준을 정하는 일이 우리에게 남아 있는 과제라 하겠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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