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세계문명여행](11)튀니지-카르타고

 -명장 한니발 낳은 4,000년전 무역 강대국

 역사에서 가정은 참으로 재미있다. 북아프리카를 이슬람화 시키고 스페인까지 이슬람의 영토를 넓힌 아랍이 만약 프랑스 투르 지역전투에서 승리하였다면? 지금의 유럽은 없을 것이다. 만약 2200여 년 전에 한니발 장군이 이끄는 카르카고가 로마와의 전쟁에서 이겼다면? 로마제국 대신에 아프리카의 카르타고 제국이 지중해를 안방의 호수처럼 둔 제국을 호령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곳은 4000여 년 전, 페니키아(지금의 레바논지역)가 해상 신민지로 북아프리카에 건설한 도시 카르타고이다. 무역으로 번성하며 강대국으로 성장한 카르카고! 마침내 지중해 패권을 놓고 벌인 로마와의 전쟁(포에니 전쟁)에서 패한 아프리카의 역사는 그러나 세계사에서 큰 빛을 발휘하지 못하고 만다. 그 역사의 현장 카르타고는, 튀니스 중심가에서 차로 30분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다.

 다훈이와 나는 처음 경험하는 아프리카 날씨에 거의 힘을 잃고 있다. 사람들은 한 낮에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카르카고를 찾아 더위 속을 헤맸다. '카르타고 한니발' 역에서 내려 야자수 가로수 길을 따라가면 바로 눈 앞에 지중해가 펼쳐진다. 그 지중해를 앞에 두고, 지금부터 4000여년 전에 번성했던 카르타고가 지금도 그 흔적을 세인들에게 남기고 있다.

 페니키아인들은 이곳 카르타고에 신도시를 건설한 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편지에 담았는데, 그 글자가 지금 알페베트의 기원이 된 페니키아 문자이다. 지금의 지중해 동부지역인 페니키아인들은 바알신을 섬겼는데, 그 신앙은 북아프리카에 카르카고를 건설한 후에도이어졌다. 이들이 바알신에게 제물로 어린이를 바쳤는데, 그 어린이의 무덤이 지금 이곳에 남아있다.

 카르타고가 로마에 점령된 후, 항구에는 원형으로 된 선착장이 건설되었다. 상선과 군함이 안전하게 정박하는 상업과 군사 요충지로서의 군사지휘소의 역할을 하였다. 또한 원형극장을 비롯하여 고급 주택가, 그리고 안토니우스 목욕탕이 건설되었다. 원형극장은 지금까지 보전이 되어있어, 음악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러나 안토니우스가 건설했다는 목욕탕은 기둥만이 외로이 지중해를 배경으로 서있을 뿐이다.



 -카르타고에서 찾은 네 사람



 카르타고에서 우리는 네 사람을 찾아 내었다. 그 한 명은 패한 장수임에도 전 세계인에게 기억되는 장군, 한니발이다. 그리고 오페라를 통해 오늘날까지도 카르타고 인으로 기억되는 전설 속의 카르타고 여왕 디도! 그가 사랑한 트로이의 아이네이스 장군! 그리고 또하나, 교부철학의 창시자 성 어거스틴이다. 나는 이들을 통해 번성했던 과거의 그 카르타고를 다시 살려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한니발, 성 어거스틴, 디도와 아이네이아스



 코키리를 몰고 알프스를 넘어 로마 깊숙이 들어가 로마인들을 혼비백산시킨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장군 이름은 몰라도 한니발은 알 정도로 우리에게 친숙하고 유명한 장군이다. 왜 그가 역사에서는 승자로 남는가? 그는 전쟁 중에 모함을 받아 국외로 추방되었고, 그의 이상을 지금의 이스탄불 지역 왕에게 호소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독을 마시고 자결한 애국자이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에게 있어 이순신 장군처럼 이들의 가슴에 한니발 장군이 남아 있는 걸까.

 두 번째 인물은 성 어거스틴이다. 방탕한 생활에 젖었던 그는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로 결국 개종을 하고 위대한 기도교 사제가 된다. '참회록' '신국' 등을 쓴 기독교 교부철학의 창시자 어거스틴은 로마인이 아니라 북아프리카 출신이었던 것이다. 그는 카르카고로 돌아와 히포에서 20여 년간 사제생활을 하며 기도교의 이론적 기초를 마련하고 후일 루터의 종교개혁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그런 위대한 인물 어거스틴은 백인이 아니라 검은 피부의 베르베르 인이다. 로마가 위대한 것은 이민족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훌륭한 인재를 배출한 개방성에 있는 것임을 성 어거스틴의 예에서 볼 수 있는 것이 흥미롭지 않은가.

 카르타고는 로마를 건국한 아이네이아스가 살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트로이가 멸망한 후 그 후손들은 각지로 흩어졌는데, 아이네이아스는 카르타고에 온 것이다. 당시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는 그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아이네이아스는 제우스의 명령으로 카르타고를 떠나 로마로 가서 시조가 된다. 홀로 남은 여왕 디도는 결국 자살하고 만다.

 재밌는 것은 로마와 그리스 인의 시조가 모두 아시아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제우스가 납치하여 크레타문명의 창시자 미노스왕을 낳게 한 유로파는 페니키아 여성이고, 카르타고를 건설한 디도 여왕도 아시아 인이다. 로마의 시조로 보는 아이네이아스도 트로이 인이니 현재의 터키땅 사람이 아닌가. 알파벳의 기원이 된 문자를 만든 이들도 아시아에 있었던 페니키아 인이다. 이들이 만든 표음문자가 그리스에 전달되어 현재 그리스어 영어 프랑스어 라틴어와 같은 유럽 문명권의 어원을 탄생시킨 것이다. 세계 문명의 발상지가 모두 아시아에 있고, 세계 종교의 발상지와 종교의 창시자가 모두 아시아 사람이며, 유럽의 시조와 알파벳을 만든 사람들 역시 아시아 인이라는 것,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현대의 역사 속에서 유럽이 그 흐름을 주도한 것은 기껏해야 산업혁명에 성공한 400여년 전부터의 일이다. 우리 스스로 작아질 그 어떤 이유도 없음은 거듭 말하지만 자명한 사실이 아닌가!(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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