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춘추칼럼]아스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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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대구파티미병원 신장내과 과장

아픔을 줄여주는 약은 인류가 오래전부터 간절히 원했다. 옛사람들은 버드나무 껍질을 빻거나 즙을 내 사용하면 통증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 기원전 1500년쯤 기록된 이집트 파피루스 문서에 남아 있을 정도로 오래됐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출산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버드나무 잎 차를 산모에게 마시게 했으며, 히포크라테스도 버드나무 잎의 진통 효과를 알고 환자들에게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버드나무 껍질은 맛이 쓰고 위장장애가 심하며 많이 먹으면 죽을 수도 있어서 약 성분만 추출하려는 노력이 계속됐다. 그 결과 19세기 초, 버드나무 껍질을 갈아서 생긴 침전물에서 약효의 주성분 물질을 추출해 버드나무의 학명 Salix에서 가져와 '살리신' (Salicin)이라 했다. 이후 화학적으로 살리실산을 대량 합성하기에 이르렀지만 심한 위장장애와 고약한 맛 때문에 여전히 먹기 힘들었다. 1897년 독일 바이엘사 연구원 펠릭스 호프만은 류머티즘으로 고생하던 아버지를 위해 부작용과 역한 맛을 대폭 줄인 아세틸살리실산(Acetylsalicylic acid) 개발에 성공했다. 아세틸의 'A'와 살리실산의 별명 스필산의 'spir'를 합해 '아스피린'(Aspirin)이라고 이름 지었고, 1899년 특허 출시된 아스피린은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약이 됐으며, 바이엘사는 세계적인 제약회사로 발돋움했다.

20세기 초 스페인 독감 대유행 때 아스피린은 독감 증상을 줄이는 데 탁월한 효능을 보이면서 명약의 입지를 굳혔으며, 1969년 달 착륙선 아폴로 11호 비행사를 따라 우주까지 진출했다.

아스피린의 기적은 그 후에도 계속돼 해열, 진통, 소염 작용뿐 아니라 각종 암 발병률을 줄이거나 알츠하이머성 치매 예방, 임신중독증 예방 등 새로운 가능성도 속속 밝혀지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혈소판 기능을 차단함으로써 혈액 응고를 막아 뇌경색, 협심증, 심근경색 등을 예방하거나 재발을 방지하는 효과다.

하지만 효능 못지않게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 위장장애는 아스피린의 가장 흔하면서도 심각한 부작용 중 하나인데 2016년 미국 질병예방특별위원회(USPSTF) 분석에 따르면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환자에게서 주요 위장관 출혈은 59%, 뇌출혈은 33% 증가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스피린을 복용한 환자에게서 심근경색증은 22%, 사망률은 6% 감소시키는 등의 효과 때문에 심각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아스피린이 여전히 널리 사용되고 있다.

코로나19가 일상을 바꾸어놓은 지 1년이 넘었지만 대유행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백신이 개발됐지만 충분한 검증을 거칠 시간 없이 급하게 사용되다 보니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알려지면서 접종을 꺼리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부작용은 다른 백신에서도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부작용이고 '희귀 혈전증(혈소판감소증이 동반된 특이부위 혈전증)' 등 심각한 부작용은 이름처럼 '매우 희귀'해 백신의 유용성에 비해 위험성이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부작용이 전혀 없는 약이나 치료는 없다. 다만 치료의 유익함이 위해성보다 훨씬 클 때 우리는 그 약과 치료를 선택하는 것이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아스피린이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 여전히 널리 사용되는 것이다.

벌에 쏘일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달콤한 꿀을 얻을 수 없듯이 부작용 무서워서 백신을 기피하면 우리는 코로나19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도 코로나19 백신(아스트라제네카)을 맞았다. 코로나19 없는 세상을 앞당기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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