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강원포럼]감사·축하·희망의 설날

최돈설 강릉문화원 부원장

어떤 인류학자가 배려정신이 탁월한 아프리카 한 부족을 찾아갔다. 그는 근처 나무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매달아 놓고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이 모두 먹을 수 있다고 얘기한 후 '출발'을 외쳤다. 아이들이 경쟁하며 달려가 과일을 낚아채는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그의 눈앞엔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펼쳐졌다. 수십 명의 아이들이 손을 맞잡고 함께 달려가 바구니에서 과일을 꺼내 나눠 먹고 있는 게 아닌가. “1등으로 달려가면 너 혼자 과일을 다 먹을 수 있는데 왜 함께 뛰어갔지?”하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우분트(UBUNTU)라고 외치며, “다른 사람이 모두 슬픈데 어째서 한 명만 행복해질 수 있나요?”라고 대답했다.

'우분트'는 반투족의 말로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I am because you are)”라는 뜻이다. '사람다움', '배려', '온유함'를 강조하는 말이다.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남아공에서 흑인들은 백인들을 향해 “당신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있었습니다”를 외쳤다. 마침내 1994년 인종차별정책이 무너졌다. 흑인들의 우분트 정신이 백인들의 영혼과 마음을 감동시켰던 것이다. '우분트'라는 말은 고(故)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국제사회에 자주 강조해 알려지게 되었다.

요즘 우리 국민의 생활 속에 배려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이 필요함을 느낀다. 무엇이 사람을 그토록 분열과 아픔으로 몰고 갈까. 최근 잇따라 발생한 충격적인 사건의 키워드는 '분노'다. 국민의 공분을 산 땅콩 회항, 가슴 여미며 바라본 어린이집 폭행, 주차 시비 야구방망이 난동, 권력과 자본을 앞세운 갑질 논란, 쳐다본다는 이유로 흉기를 휘두른 '묻지마 살인'도 있었다.

이제 우리는 우분트 정신으로 사회를 바꿔가야 한다. 한 개인과 나라 발전에 기여할 3대 말씨를 꼽으라 하면 '감사의 말씨', '축하의 말씨' 그리고 '희망의 말씨'라고 본다. 우리나라 국민이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더 자주 쓰기 시작한 시기와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진입한 시기가 일치한다. 이런 변화된 의식과 병행하여 경제성장이 가속화되었다. 지금 우리가 2만6,000달러 시대를 맞이한 것은 다 그러한 말들로 인한 의식의 변화 덕분이라고 믿는다. 현재 강릉시가 시민사회와 함께 추진하고 있는 올림픽 시민운동 '스마일 캠페인(Smile/스스로, 마음이, 일어나는)' 역시 '감사합니다'에 다름 아니다. 다음으로 '축하합니다'라는 말이야말로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당겨줄 축하의 말씨라 여긴다. 선진국의 생활문화를 살펴보면, '축하합니다'라는 말이 그 국민의 일상언어라는 사실을 느끼곤 한다. 축하야말로 상생의 언어요, 화합의 언어다. 2만 달러는 경쟁의 논리로 가능할 수 있지만, 3만 달러 시대는 공생의 논리, 축하의 논리가 아니면 절대 불가능하다고 본다. 축하는 우리에게 힘과 에너지를 선물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희망의 말씨'를 자주 활용해야 한다. 긍정적인 미래는 부정적인 언어와 생각에서 탄생하지 않는다. 어둠을 몰아내는 것이 빛이듯, 절망을 몰아내는 것 역시 희망밖에 없다고 한다. 사람은 빵만이 아니라 의미를 먹고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더불어, 함께' 사는 상생 내지 공생의 이치로 가면 화합의 길은 멀리 있지 않다. 화기애애한 사회 분위기는 말로써 만들어진다. 벌써 한 가족의 유대와 연대를 확인하는 설 명절이 다가온다. 온 가족이 정겹게 앉아 감사·축하·희망의 말로 북돋아 줄 때 우리 사회는 더욱 아름다운 변화를 시작할 것이다.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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