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강원포럼]개정 교육과정 서둘지 말아야

민병희 강원도교육감

얼마 전 국회포럼에서 필자는 '교육혁신을 위한 국가교육위원회의 필요성과 쟁점'을 발제했다.

국가 차원의 교육정책이 정파적 이익에 휘둘리는 사례가 빈번히 일어나고, 헌법 제31조가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보장을 규정하고 있지만, 정권마다 예외 없이 한탕주의식 교육정책을 쏟아 내 교육을 파행으로 몰아가고 있음을 구체적 실례를 들어 설명했다.

모법인 법률의 한계를 넘어서는 시행령 개정이나 시행령에 대한 자의적 해석으로 법치주의와 교육자치를 훼손한 사례, 또는 혁신교육 정책을 추진하지 못하도록 관련 규정을 의도적으로 개정한 사안도 부지기수다.

그중에는 초·중·고교 교육 전반, 그러니까 각 학교급·학년별로 배워야 할 교과목과 그 내용 범주, 수업 시수, 교수학습 방법, 평가 방법까지 담고 있는 밑그림이고 설계도인 교육과정의 졸속 개정도 포함된다. 국회포럼과 거의 같은 때, '2015 개정 교과 교육과정 시안 공청회 일정'이라는 교육부 공문이 왔다.

교육과정 총론과 각론 공청회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총론 포함 25교과목 공청회를 보름 만에 해치운다는 공문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교육과정을 9월에 확정·고시하고 2017년 3월 현장에 적용한다니 말문이 막힌다.

졸속 추진으로 비판을 받았던 이명박 정부의 2009 개정 교육과정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1차 공청회로부터 고시까지 3개월이 걸렸다.

2009년 12월에 총론이 고시되고, 2년 뒤인 2011년에야 각론이 나왔다. 그런 까닭으로 올해가 되어서야 2009 개정 교육과정이 초·중학교 전 학년에 적용되었고, 고3은 내년에야 도입된다.

교육부가 이러는 이유는 초등 1~2학년 안전교과 신설, 수업 시수 증가 등 합의를 이끌어내기 어려우니까 아예 그 과정을 없애려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2009 교육과정에 들어 있는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3·1정신과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계승했음을 이해한다'는 학습 목표가 이번 시안에서 빠진 것과 지난 광복절 축사에서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역사가 1948년에 시작되었다는 이른바 '건국'론을 언급한 것 또한 무관치 않아 보여 우려스럽다.

문·이과 융합을 강조하면서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을 제시한다거나 초등 1~2학년의 경우 각 교과에서 멀쩡히 통합 교육하던 '안전' 내용을 다시 분리해 '안전생활' 교과를 신설한다는 자기모순과 이율배반을 애써 외면하려는 의도라 여겨진다.

또한 총론에서는 언급도 없는 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는 얼마나 느닷없는지, 하루가 멀다고 변화하는 소프트웨어 교육 교과서를 어떻게 만들고 이를 가르치는 교사는 어떻게 키워 내겠다는 것인지 걱정이다.

애초 개정의 빌미는 대입전형과 수능이었다. 그런데 현재 중1 학생들에 해당하는 대입 체제를 2017년에야 발표하겠단다. 수능에 어떤 과목이 들어갈지 등도 못 정한 채 교육과정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호미로 막을 것 가래로도 못 막아 우리 교육을 물바다로 만드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교육과정 개정은 깜깜이로, 조급히 다룰 일이 아니다. 오히려 정부가 서둘러야 할 것은 이런 교육 관련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면서 앞으로 30년, 우리 교육이 가야 할 교육과정과 교육제도를 논의하는 국가교육위원회 같은 사회적 합의기구 구성이다. 교육과정 개정을 멈추고 국가교육위원회 설립에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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