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강원포럼]사색하는 삶은 방향을 잃지 않는다

최돈설 강릉문화원장

최돈설 강릉문화원장

이미 하늘에 별이 되신 신영복 교수가 대전교도소에서 복역할 때의 일화입니다. 함께 생활하는 사람 중에 한밤중에 변소를 다녀오면서 문을 쾅 닫는 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문에 자전거 튜브를 끼워 놓았는데도 소리가 요란해서 아침마다 다른 이들에게 핀잔을 받았답니다. 하루는 신 교수가 그에게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는데 왜 그러십니까?” 하고 묻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제가 축대 위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다리를 다쳤어요. 쪼그렸다 일어나면 완전히 마비가 되는데, 추워 마비가 풀릴 때까지 있을 수가 없어서 늘 문을 놓치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신 교수는 적잖이 놀랐다고 합니다. 그런 속사정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늘 따가운 시선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라고 하자 돌아온 말에 그는 또 한번 놀랐습니다. “어떻게 세세한 것까지 이해받나요. 그냥 이렇게 살아야죠.” 이 일로 신영복 교수는 사람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이라는 좌우명도 생겼다고 합니다. '남을 대하기는 봄바람처럼 관대하게 하고, 자기를 지키기는 가을 서리처럼 엄정하게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신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겠지 생각하고, 나에게는 더욱 엄격하게 해야 합니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땐, 상대에게 내가 모르는 수많은 사연이 있을 거라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타인에 대한 섣부른 판단은 진정한 관계를 맺는 것을 방해하곤 합니다. 나 자신이 살아온 과정도 온전히 기억하지 못하는데 남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지를 어찌 다 알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작은 부분만으로 남을 쉽게 판단하곤 합니다. '대인춘풍 지기추상'을 세우고 노력한다면 그런 잘못도 점점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빠름의 철학을 신봉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에 일하러 온 외국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빨리빨리'라고 합니다. 깎아지른 듯한 히말라야 산맥을 오가는 '다지어링 히말라야 특급열차'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고 합니다. “slow(천천히)는 네 개의 철자로 되어 있고 life(삶)도 그렇다. speed(속도)는 다섯 개의 철자로 되어 있고 death(죽음)도 그렇다.” 생사가 갈리기도 하는 험준한 산맥에서 만나는 짧은 문장이 의미심장합니다. 늦은 밤에는 잡다한 일상의 언어나 행동, 늦게까지 따라다니는 온갖 근심 걱정 다 내려놓고 자신의 중심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루 종일 세상일에 분주했다면 어둠이 내린 시간, 고요히 자신과 만나 보세요. 성찰이 없는 삶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통찰이 없는 삶에는 생기가 없습니다. 사색하는 삶은 방향을 잃지 않기 때문입니다.

'좋은 꽃의 향기는 백 리를 가고(花香百里), 좋은 술의 향기는 천 리를 가고(酒香千里), 좋은 사람의 향기는 만 리를 간다(人香萬里)'고 했습니다. 좋은 사람의 향기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좋은 사람의 향기는 다른 사람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깊기 때문일 것입니다. 벌써 경칩이 뒷자락에서 꿈틀거리네요. 곧 겨울 동안 파업을 끝낸 나무와 풀들이 녹색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하면, '인향만리'로 강원도→대한민국→지구촌을 좋은 향기로 꽃피우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닐까요. 올림픽 도민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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