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강원포럼]강원도에 메밀이 없다

박철호 강원대 의생명과학대 교수, 전 세계메밀학회장

박철호 강원대 의생명과학대 교수, 전 세계메밀학회장

주말에 온통 초록인 유월의 들녘을 보러 나섰다. 홍천 곳곳에 옥수수가 허리춤만큼 자라고 있고 봉평엔 감자꽃이 한창이다. 봉평과 진부에 들러 메밀가공업계를 찾았다. 도내에서 가공되는 수백만 톤의 메밀원곡이 제주도산이거나 수입산이 대부분이란다. 이유를 물었더니 도내의 재배면적과 생산량으로는 수요에 턱없이 못 미친다는 것이다. 요즘 제주도는 메밀의 고장 강원도에도 저희들이 메밀을 공급한다고 의기앙양이다. 이미 효석문화제라는 메밀 6차산업의 성공적인 모델이 봉평에 뿌리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내 업계는 제주도산 원곡에 의존하고 있고 제주도가 새롭게 메밀 6차산업의 기치를 드높이고 있다.

최근 춘천 근교의 강변 메밀밭이 눈길을 끌고 있으나 눈요깃감이나 관광홍보용 수준이다. 춘천막국수산업을 뒷받침할 만한 재배규모나 단지(團地)화는 예나 지금이나 '희망사항'일 뿐이다. 한마디로 강원도에 메밀음식은 많아도 도내산(産) 메밀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밀은 강원도를 대표하는 향토특산물이다. 강원도에서 메밀의 문화사적 역사성과 향토성은 도민의 삶의 원형과 맞닿은, 고유한 '스토리'로서 지연(地緣)산업의 핵심소재다. '스토리'가 대세인 현대의 산업과 시장에서 '있는 스토리'마저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처박아 두거나 남에게 빼앗긴다면 그것은 지역의 역사와 전통은 물론 향토문화에 대한 홀대요, 배신이다.

중앙정부의 농정에서 메밀이 소외되기 시작한 것은 오래전의 일이다. 정책 자료에서 사양산업으로 분류되기도 했고 통계조사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경제적인 논리와 탈농에 따른 노동력 부족 등 농촌 환경의 변화로 농가에서 메밀재배를 기피하는 것이 주된 이유이므로 시장과 유리된 정책적인 장려가 해답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강원도적임을 빛내 준 메밀에 대한 강원도의 배신과 홀대가 강원 농정의 몰락을 상징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시장(市場)의 눈치만 보는 농정과 농민을 표(票)로만 보아 지지기반으로서의 다수 농민이 선택하는 작목에만 관심을 두는 정치로는 강원도 메밀의 회생(回生)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지역에서 생산되지도 않고, 생산되더라도 수요를 절반도 충당하지 못하는 취약한 기반으로는 메밀 아닌 그 어떤 농축수산물도 중앙 정부의 재정 지원이나 민간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이제 향토특산물의 개발도 경제논리와 함께 신뢰프로세스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봉평 뜰에 감자를 수확하고 나면 효석문화제를 위한 메밀꽃밭이 '소금을 뿌린 듯이' 펼쳐질 것이다. 9월(7~11일)엔 세계 20여 개국, 200여명의 메밀학자와 메밀업계 인사들이 제13차 세계메밀학회에 참석하고자 2001년에 이어 또다시 봉평을 찾게 될 것이다. 메밀이 정책적으로나 연구개발 지원에서도 관계 기관의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한 형편 속에서도 그나마 학계의 노력으로 중국과 일본, 슬로베니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도 15년 만에 두 번째 세계메밀학회가 개최되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강원도 메밀의 중흥을 위한 도민들의 의식 변화와 정책적 배려 및 강원 메밀 산업의 비전과 전략이 진지하게 모색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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