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데스크칼럼 대청봉]강원문화재단 수장의 조건이 `정치력'이었나

오석기 문화부장

특정인 겨냥 날 선 비난

20년 역사상 첫 대표이사

선임 실패 초유의 사건

축구감독 뽑는데

선수관리·전술 관심 없고

구단주 눈치만 보라니

강원문화재단 20년 역사상 첫 번째 대표이사 선임이 실패로 돌아갔다. 공고가 났으니 후보는 있었다. 절차가 진행됐으니 초대 대표이사 선임도 있었다. 하지만 선임 공고 직후 대표이사 지명자는 곧바로 직을 수행할 수 없음을 알렸다. 초유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 얼마나 무책임한 행동인가. 그런데 궁금증이 생긴다. 원서를 내고 면접까지 본 사람이 왜 그랬을까.

대표이사 선임 과정에서 그를 둘러싸고 벌어진 말과 글들의 향연을 지켜본 이들은 그럴 수밖에 없던 그의 행동에 고개가 끄덕여 질 것이다. 자신을 향한 모욕과 억측, 비난에 대해 '후보'라는 한없이 수세적일 수밖에 없는 위치에서 하릴없이 침묵해야 했던 그가 내놓은 최소한의 방어, 저항 그리고 임명권자에 대한 배려였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덕분에 강원문화재단은 '제16회 평창대관령음악제' 시작을 코앞에 두고, 또 야심차게 준비한 '제1회 평창남북평화영화제'개막을 채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채 수장 없이 두 개의 큰 행사를 치러야 하는 부담감을 안게 됐다. 재단 직원들은 때아닌 날벼락에 황망해하고 있다. 아니 분노하고 있다. 현장의 분위기는 그렇다.

면접이 채 진행되기도 전에 특정인을 겨냥해 이 사람은 안 된다는 식의 악의적이고 날선 비난이 쏟아져 나올 때부터 이런 상황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지난 일들을 플래시백(Flashback) 해보자. 아무리 관대 하게 봐도 문화계에선 보기 드물게 낙선 운동이 벌어진 것이다. 아니 대표이사 선임 과정 개입이라고 하면 과격한 표현일까. 아무튼 타깃은 응모자 중 오직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를 끌어내린 말들의 성찬 안에는 정작 문화계 사람들의 '의사' 따위는 없었다는 것이다. 존중은 두말할 나위 없었다. 얄팍한 잇속 차리기만 가득했다. 우려한다며 내뱉은 말에 팩트는 없었고, 논리랍시고 펼쳐 놓은 글에는 개연성이 없었다.

묻고 싶다. 정말 강원도 문화의 앞날이 그리도 걱정됐나. 그래서 그런 무책임한 추측의 성(城)들을 그리도 켜켜이 쌓았단 말인가. 그는 비공무원 출신 첫 사무처장으로 재단에서 6년 넘게 일하면서 유연한 조직문화를 만들고 재단 내에 근무하던 기간제 근로자들을 무기계약직으로, 다시 일반직으로 전환시켜 처우를 개선하는 등 고용을 안정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강원영상위원회를 만들었고, 2018평창동계올림픽 당시 문화올림픽도통합추진단장으로 세계인을 상대로 수많은 문화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치러내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특히 누구보다 지역의 젊은 문화예술가들과 활발하게 소통했다. 그가 재단에서 보여준 업무능력은 분명 이전 사무처장들의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이 정도 활동쯤은 꿈도 못 꿀 자리가 강원문화재단 대표이사 자리인가.

이번 일을 지켜보면서 강원문화재단 대표이사, CEO의 조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기자 생활 중 십수년을 문화부에 있으면서 내가 갖고 있던 기준이라는 게 정말 형편없는 것이었을까 자책도 해본다. 이전까지 나는 강원도 대표 문화행정가의 덕목은 첫째도 둘째도 문화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라고 생각했다. 축구감독 뽑는데 감독이 선수 관리나 전략·전술 따위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구단주 눈치만 보고 동네 유지들 비위나 맞춘다면…. 말 그대로 '축알못'이 감독하면 곤란한 것 아닌가. 그동안 우리에겐 '문알못'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저들이 생각하기에는 아직 그런 사람이 필요한 모양이다. 후회한다. 그에게 문화는 몰라도 좋으니 적당히 부탁도 들어주고 필요하면 굽신거리고 때로는 립서비스도 하면서 '정치'를 하라고 조언할 걸 그랬다. 그동안 수고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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