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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침몰사회

“그들은 죽을 수 있기에는 너무 생생하고 살 수 있기에는 너무 죽어 있는 것이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당시 카를스루에 조형예술대학 재직) 교수가 2010년에 독일에서 발표한 '피로사회'의 국내 번역본(문학과지성사 간)에 수록돼 있는 강연 원고 '우울사회'의 갈무리 문구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성과사회, 규율사회 속에서 자신의 성취를 위해 스스로를 착취한 탓이다.

▼현대인의 모습을 꿰뚫어 본 한병철의 주장에 대해 국내학자 주창윤은 '허기사회(글항아리 간)'를 내밀었다. 한국인은 시공간적 특수성으로 인해 배를 채웠음에도 곧바로 허기를 느낀다는 것이다. 정서적 식욕 때문이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정서적 허기는 경제적 결핍과 관계적(문화적) 결핍으로부터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우리 시대의 문화는 퇴행, 나르시시즘, 분노의 색채를 띠고 있다”면서 이것이 '허기사회'의 징후라고 역설했다.

▼사회적 병리와 패턴, 그 현상에 대한 진단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책이 최근 잇따라 출간됐다. '단속사회(엄기호 저·창비 간)' '투명사회(한병철 저·문학과지성사 간)' '분노사회(정지우 저·이경 간)' 등이 우리 사회의 불편한 실상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베를린예술대 교수로 있는 한병철은 '투명사회' 권두에 우리 시대에 나타난 유형을 제시했다. 긍정사회, 전시사회, 명백사회, 포르노사회, 가속사회, 친밀사회, 정보사회, 폭로사회, 통제사회 등이다.

▼진도 앞바다에 침몰한 '세월호' 사고가 국민을 패닉상태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 사고 자체도 경악스럽거니와 위급한 상황에서 취해야 하는 안전조치 매뉴얼이 무용인 지경이다. 관계 당국의 부실한 대처는 안전문화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게 한다. 우왕좌왕, 전전긍긍 행태가 침통·분통을 부추기는 형국이 아닌가. 이 정도면 분노사회를 넘어 '침몰사회'다.

용호선논설위원·yonghs@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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