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학도병으로 산화한 친구들 유해라도 찾았으면…”

6월 호국보훈의 달

◇도 학도의용군회 소속 유해찾기본부 지희봉씨 등 회원들이 홍천 삼마치 고개 전투현장을 찾아 친구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1950년 자원 입대한 지희봉씨

친구 26명 중 5명만 생존해

수색 중 적에게 습격당했던

홍천 삼마치 고개 다시 찾아

유해·유품 발굴에 매달려

“6·25 전쟁에서 잃은 형순이와 승석이 유해라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지희봉(79)씨는 6·25전쟁이 발발한 지 불과 4개월 뒤인 1950년 10월 친구 26명과 학도병으로 자원 입대했다. 당시 지씨와 친구 이형순, 최승석씨 등은 춘천중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인 17살에 불과했다.

이들은 한 달여간 훈련을 받은 뒤 11월 8사단 21연대 백호부대에 배치됐고 매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지씨가 절친한 최씨와 이씨를 잃은 곳은 북한군과 엎치락 뒤치락하던 홍천 삼마치 고개에서의 전투이다.

아직도 생생한 1951년 2월12일 새벽. 지씨는 친구들과 함께 홍천 삼마치 고개로 수색을 나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친구들과 손을 잡고 움직이던 지씨의 귀에 갑자기 꽹과리와 피리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기 시작했고 이어 수백발의 총탄이 날아들었다. 이후 지씨는 절벽으로 굴러 떨어졌고 최씨와 이씨를 그때부터 보지 못했다.

지씨는 당시 상황을 “친구들과 소대원의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고 현장은 아비규환이었다”며 또렷이 기억했다.

전쟁이 끝나고 오랜 시간이 지난 1958년부터 지씨는 생각이 날 때마다 삼마치 지역을 더듬어 갔다.

매번 친구의 유해나 유품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산을 오르지만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다. 당시 지씨와 함께 참전했던 친구 중 아직까지 살아남은 5명은 2009년부터 아예 함께 흔적 찾기에 나서고 있다.

도학도의용군회 소속 회원들도 뜻을 모아 유해찾기본부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나섰다. 지씨는 “전쟁 당시 친구들과 잡고 있던 손을 놓친 것이 잊히지 않는다”며 “학도의용군의 경우 군번줄 등이 없어 찾기가 어려운 만큼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고 친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 죽는 날까지 유해를 찾아 다닐 것”이라고 했다.

현재 6·25전쟁에 참전한 도 학도의용군회 소속 회원은 300여명이다.

박진호기자 knu10@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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