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인생 2막, 새 삶을 산다]26번째 주민등록지 인제에 둥지 … 새마을지도자·교수로 새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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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군생활 마치고 문해교사로 변신한 김상우씨

① 김상우씨는 전역을 한 뒤 대학 출강을 하면서 잠시 마을회관에서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어르신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문해교실을 시작하게 됐다. ② 30년 동안 군생활을 한 김상우씨는 육군과학화 전투 훈련단에서 2002년부터 2005년까지 통신운용처장으로 근무를 한 인연으로 인제에 정착했다. ③ 김상우씨는 농사는 물론 마을 주민으로서의 주인의식을 갖고 인제 어론리 새마을지도자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인제=오윤석기자

지난달 23일 홍천에서 인제로 들어서는 관문인 남면 신풍리 마을회관.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느지막이 한글을 깨치려는 어르신들의 학구열로 가득찼다. 칠공주 어머니로 불리는 허리가 90도로 굽어진 윤명자(74)씨, 오랫동안 외지에서 살다가 남편 고향인 신풍리로 이사를 와 한글 공부과 함께 컴퓨터까지 배워 문해교사와 인터넷으로 이메일을 주고받고 있는 전상순(71)씨. 이들은 찜통 같은 더위 속에서도 매주 목요일이면 경로당을 찾아 한글을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이처럼 어르신들이 문맹 탈출을 통해 새로운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던 것은 30년 동안 군인으로 전국을 누빈 뒤 인제에 정착한 예비역 육군 중령 김상우(60)씨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 근무 인연

전역 후 고향 평택 대신 인제 정착

상지영서대·한림성심대 등서 강의

정착 초기에 어려움도 겪었지만

마을 일에 적극 참여하며 농사일

여엿한 어론리 새마을지도자로 활동

방학 중 마을회관서 한글 가르치던 일

현재는 남편 3개 마을 찾아가 교육

"즐거워하는 어르신들 보면 보람"

■인제에서 군복 벗고 정착=김상우씨는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에서 2002년부터 2005년까지 통신운용처장으로 근무를 하면서 인제와 인연을 맺었다. 2005년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 근무 중 원주 상지영서대 국방정보통신과 초빙교수 모집을 보고 전역을 결심한 뒤 실행에 옮겨 대학교수가 되기도 했다. 지금은 한림성심대 정보통신네트워크과에서 강의와 군부대 등에서 자원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전역 후 고향인 경기도 평택으로 가지 않고 인제에 정착한 것은 마지막 근무지 인근 마을이기도 하지만 대학 출강을 위해 굳이 이사를 할 필요가 없었고 시간이 나면 틈틈이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쳐 주면서 정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군생활을 포함해 그동안 25번이나 주민등록지를 옮겨 다닌 뒤 26번째 주민등록지인 인제에서 인생2막의 새 삶을 시작하려고 둥지를 튼 것. 처음에는 어려움도 많이 겪었다.

어느 날 동네 상갓집에 갔더니 한 젊은이가 “여기에 왜 들어와 사느냐”고 직격탄을 날려 무슨 뜻인지 몰라 어안이 벙벙했다. 알고 보니, 동네에서 부대 훈련장 부지를 이용해 농작물을 재배하려고 하는데 다른 동네 사람은 부대장을 안다며 힘을 쓰는데 왜 이 부대 출신이면서 마을 일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이 때부터 마을의 이방인이 아니라 주민의 한 사람이라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마을의 크고 작은 일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농사를 지으면서 어론리 새마을지도자로까지 활동을 하고 있다.

■사람을 해(害)하는 직업에서 사람을 살리는 문해교사로 변신=김씨는 처음부터 어르신들의 문해교육에 나설 생각은 없었다. 전역을 한 뒤 대학 출강을 하면서 방학을 이용해 잠시 마을회관에서 간단한 컴퓨터 사용법과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어르신들에게 글공부를 가르쳐 주려고 시작했다.

그동안 어르신들과 몸을 부딪치며 1년 동안 같이 공부를 하면서 정이 많이 들었고 어르신들도 선생님을 반겨 자연스럽게 문해교육에 집중할 수 있었다.

김씨는 “남면지역 3개 마을을 찾아가 어르신들에게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의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며 “때로는 어르신들의 고단한 삶의 긴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인생을 배우는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한때는 적을 격멸해야 하는 직업인 군인의 신분이었지만 2012년 문해교사 자격증까지 취득해 재능기부에 나서는 등 우여곡절의 인생2막이 아닌 환갑의 나이에 행복한 인생3막을 살고 있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자기계발에 아낌없는 투자=김씨는 군생활 당시는 물론 지금도 자기계발에 소홀하지 않는 성실함을 자랑하고 있다. 가난한 농부의 5남1녀 가운데 넷째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도 아버지에게 떼를 써 진학해야 했고 졸업 후 빨리 사회에 나가 직업을 가지려고 1973년 전문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재학 중 군대 갈 나이가 되면서 이왕 군생활할 거면 장교로 복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1974년 당시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 피격사건이 발생했고, 새로운 장교과정이 생겨 1975년 시험에 합격한 뒤 1년 과정의 훈련을 마치고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군에서도 자기계발을 위해 틈나는 대로 공부를 해 장교영어반 과정에 들어갔고, 3사관학교 근무할 당시 군 위탁과정에 합격해 영남대에 진학해 꿈에 그리던 4년제 대학 졸업장을 가슴에 안았다. 이어 38세의 늦은 나이에 한국외대 주간 위탁과정에 입학해 이란어과를 졸업했으며 합참에 근무할 당시 50세의 나이에 아주대 정보통신대학원에서 C4I(지휘, 통제, 통신, 컴퓨터, 정보)를 전공하기도 했다.

군 전역 후 MBTI 일반강사, 사회복지사 2급, 학교폭력·가정폭력·성폭력 상담사, 심리상담사, 학습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한 것을 포함해 그동안 취득한 자격증이 모두 23개에 달한다.

김씨는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마을 주민들을 위해 그동안 배운 지식과 경험을 나누고, 앞으로 많은 이들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도록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어디든 찾아가 용기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정신을 강조했다.

여기에서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말은 어떠한 안 되는 일을 억지로 꾸며서 하라는 부정적인 뜻이 아니라 하면 이루어지니 될 때까지 열심히 노력하라는 긍정적 의미라는 것.

김씨는 “훌륭하게 된 사람들의 공통점은 환경을 탓하지 않으며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이라며 “평생 배우지 못한 한(恨)을 풀기 위해 바쁜 농사일에 쫓기면서도 한글 공부를 하면서 즐거워하는 어르신들을 보면 보람을 느끼는 한편 보다 많은 어르신이 문해교육에 참여해 재미있고 즐겁게 공부를 할 수 있도록 교재연구에 더 신경이 쓰이는 등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워진다”고 말했다.

인제=권원근기자 stone1@kwnews.co.kr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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