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인생2막, 새 삶을 산다]연극인으로 사는 지금이 내 인생의 클라이맥스

드라마 인기작가 유명세 뒤로하고 `양양 실버연극단' 창단한 이상준(61)씨

◇방송드라마 작가 출신의 이상준(61)씨는 2011년부터 양양에 정착해 주민들로 구성된 극단 '행복한 시작' 단장으로 제2의 인생을 개척하고 있다. 이 단장이 공연을 앞두고 단원들을 지도하고 있다. 양양=박승선기자

KBS 대하사극 '삼국기' 등

25년간 드라마·영화 집필

부인 투병으로 양양 정착

63~84세 26명 단원들

연극 한번도 못 본 문외한

생업도 포기하며 구슬땀

무대서 죽는다는 사명으로

그 열정에 보답하고 싶어

사회에 공헌하며 살겠다는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꿈

되찾게 된 요즘 너무 행복

“사회에 공헌하며 살겠다는 어린 시절의 꿈을 잃어버린 채 현실에 타협하면서 살아온 지난 시간들을 요즘 연극을 통해 되찾게 돼서 너무 행복하다. 찌든 삶의 무게를 훌훌 털어버리고 유쾌한 웃음속에서 그동안 접어두었던 초년의 꿈을 하나 둘 이뤄가면서 나 자신이 진정 원하던 것을 느끼며 살아가는 지금이 참으로 행복합니다.”

드라마 작가로 유명세를 떨치며 남부럽지 않았던 현실을 뒤로한 채 문화예술 오지인 양양에서 실버연극단을 창단해 모험스러운 삶을 시작한 이상준(61)씨. 현실이 너무 행복해 꿈만 같다는 그의 인생 2막 이야기를 들어본다.

이 작가는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198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흰꽃'으로 당선돼 25년여간 드라마와 영화 등 극본을 집필하는 작가의 인생을 걸어왔다. 1993년에는 KBS 대하사극 삼국기를 집필하는 등 수많은 드라마 극본으로 방송계에서 이름을 떨치기도 했다.

그러나 인기작가라는 굴레 속에서 허우적거릴수록 어린 시절의 꿈은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젊음의 시간을 계속 흘려 보내게 된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불행하게도 부인의 투병으로 인해 나를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부인의 건강을 이유로 찾은 곳이 지금의 양양군 현북면 하조대이다. 양양은 2006년 드라마 극본 작업을 하기 위해 현북면 어성전리에 거주한 인연이 있기도 한 곳으로 2011년에 둥지를 틀었다. 처음엔 후진 양성을 위해 드라마작법 강의를 하고자 강릉에서 고성까지 직접 뛰어다니며 15명의 수강생을 모아 현북면사무소에서 시작했다. 문화예술의 오지이지만 양양 주민들의 숨어있는 '끼'를 간파하고 생활속에서 신나는 삶을 이뤄나갈 수 있도록 풍물패 창단과 군무단까지 만들었으나 공연을 단 한 번도 하지 못한 채 해산됐다.

이러한 아픔 속에서 이 작가에게 양양문화원에서 실버학교 연극취미반 강사 제의가 들어와 이것을 계기로 '양양 실버연극단' 창단으로 이어진 것이다. 실버연극단원은 최연소 63세에서 최고령 84세까지 26명으로 2012년 5월 창단과 함께 첫 작품인 '양양쾌지나' 연습에 들어가 그해 겨울, 12월29일 첫 공연을 양양 문화복지회관에서 성공적으로 올렸다. 이들의 공연은 하루아침에 유명세를 탔고 속초, 고성, 강릉, 춘천, 인제 등 20회에 이르는 공연행사를 펼쳤다.

첫 공연이 대히트하면서 2013년에 양양극단 '행복한 시작(주)' 창단과 새 작품인 '미시리'도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으며 공연 요청이 줄을 잇고 있다.

무대에 올리는 작품마다 히트를 치면서 극단의 인기도 전국적으로 높아져 갔다. 올해는 6개 읍·면을 찾아다니며 순회 공연장마다 관객들과 연기자들이 하나가 돼 울고 웃으면서 진정한 연극의 참맛에 흠뻑 취하기도 했다.

단원들은 또 하나의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양양 5일장이 열리는 야외무대에서 '장터극 송이전'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특히 이번 공연은 송이의 고장 양양을 홍보하는 내용으로 5일장을 찾는 주민과 관광객들과 함께 모두가 연기자인 듯 어울려 신나는 장터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모두가 구슬땀을 흘렸다.

단원들이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연극에 임하는 자세는 여느 젊은 지망생보다 더 뜨거운 열정을 보이고 있어 너무나 고맙고 눈물이 난다. 이들은 무대에서 죽는다는 사명감으로 연기를 하는데 건강상 연기를 그만둘 때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이러한 열정에 보답하기 위해 상설공연장을 서둘러 확보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양양문화원 2층에 비어있는 옛날식 극장을 활용해 상설공연장으로 마련하려고 건의했으나 행정에서 시설정비에 많은 예산이 든다며 난색을 보이고 있다.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단원들은 2015년 전국대회 출전과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프린지 국제연극 페스티벌 출품 준비에 여념이 없다.

“올해 강원연극제에 출전하려 했으나 창단 2년 이상 참가자격이 안 돼 꿈을 이루지 못했다”며 “극단의 실력은 전국의 최상급이어서 출전만 하면 좋은 성적을 올릴 것으로 확신한다”는 이 작가는 개인적으로 몇 가지 꿈을 밝혔다.

단원들은 모두가 연극을 시작하기 전에 단 한 번도 연극을 관람해 보지 못한 문외한이였다. 그러나 연극에 발을 들여놓은 뒤부터는 어느 누구보다 더 열정적이며 생업까지 포기한 채 몰두하는 단원들도 있다. 이러한 단원들을 위해 사회적기업을 신청했다. 이들은 연극이 좋아 순수 자원봉사하듯이 자율적으로 참여하지만 최소한의 생활비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한 대책이다.

문화예술 불모지인 양양군을 연극의 도시로 만들어 전국에서 연극 마니아들이 찾아드는 것이 또 하나의 꿈이다.

이러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역 식자층의 전폭적인 관심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양양지역에서는 사회단체를 비롯 전반적으로 연극에 대해 관심이 없지만 이들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단원들은 더 많은 노력의 땀을 흘리고 있다.

또한 양양국제공항이 활성화되면서 많은 중국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이러한 관광객들이 중요한 관객들이다. 중국관광객들을 위해 중국 마오쩌둥을 소재로 한 연극을 올려 이국에서 모국의 역사적 인물을 연극으로 만나게 함으로써 색다른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값진 추억을 만들어 명실상부한 '연극의 도시 양양'으로 부상하는 꿈을 이루고 싶단다.

'인생은 연극이다'라는 말처럼 단원들은 자신들의 삶을 무대에서도 그대로 표현하고 있어 인생을 연극처럼 살아가고 연극을 삶의 한 부분처럼 그대로 녹여내는 연기에 감동할 뿐이다. 연극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이들에게 마음놓고 연기할 수 있는 공간을 하루빨리 마련해 주고 싶어한다. 하루의 생활에 쫓겨 생업전선에 나가야 하지만 무대에 서고 싶다는 열정에 몸부림치는 단원을 위해 연기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꿈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으로 믿고 있다.

드라마 작가로서의 유명세와 생활의 여유마저 미련 없이 벗어던지고 보잘것 없는 시골 극단을 만들어 시나리오 연출 등 무거운 짐을 스스로 짊어지는 외로운 길을 택했지만 삶을 그대로 연기하는 단원들의 순수한 열정에 오랫동안 잊고 지내온 인생의 참맛을 알게 됐다는 이 단장의 미소에는 진정한 행복이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양양=이경웅기자 kwlee@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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