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Week+]101세의 강태공, 오늘도 세월을 낚는다

[100세시대, 행복한 삶]'잉어 낚시의 달인' 원주 이호준 할아버지

건강한 삶을 이야기할 때면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들이 있다.숙면과 소식, 낙천적인 성격, 그리고 좋아하는 취미 생활 등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건강 생활에는 늘 이런 요소들이 필수이다.

원주시 단구동의 아담한 단독주택에 할머니와 함께 오순도순 해로하고 있는 올해 101세의 이호준할아버지의 건강한 삶은 이런 필수 요소들로 꽉 채워져 있다.

그를 보면 건강한 삶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그의 건강비결의 첫째는 단연 취미생활이다. 100세가 넘은 나이에도 취미생활을 즐길 정도면 가히 지존이다.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강태공이다.특히 잉어 낚시는 프로다. 최고 기록은 90㎝다. 젊어서부터 잉어 낚시의 그 짜릿한 입질에 지금 나이에도 손을 못 놓고 즐긴다. “지금도 낚시갈 생각을 하면 마음이 설레지. 날이 풀리면 낚시갈 생각에 어서 빨리 따뜻한 날이 오기만 기다려”

그는 1층 베란다에 쌓아둔 낚시 가방을 볼때마다 훌쩍 낚시 떠날 생각이 굴뚝같다. 베란다에 쌓아둔 낚시 가방 서너개에 낚싯대만 6개나 된다.평생을 즐겨온 낚시도구요 그의 친구이다. “젊을때부터 하루종일 열심히 일하고 저녁때면 낚시가서 하룻밤을 자고 오지. 당일치기로 하면 잡히질 않아.”

그가 즐기는 낚시는 잉어낚시다.붕어 등은 아예 잡지를 않는다.미끼도 닭사료를 사용하고 낚싯대도 잉어 낚시만 하는 낚싯대를 사용한다.

그는 낚시에 대한 철학, 즉 도가 있다. 잡아 온 잉어는 반드시 동네 이웃들을 불러다 함께 먹는다. 그가 낚시를 갔다 오는 날은 으레 동네 잔칫날이다. 판부면 서곡저수지에서는 큰 잉어를 9마리나 잡은 적도 있다. 고무대야에 한가득이다. 상추에다 잉어 찜으로 맛있게 준비해 동네 이웃들과 함께 즐긴다.

낚시 뒤풀이를 늘 이렇게 하다보니 부인이 고생이다. 부인 윤옥년(84)씨는 “할아버지가 낚시만 하면 이렇게 잔치를 하다보니 귀찮지. 나만 고생이야”라며 웃는다.

그에게 또 하나의 낚시 철학은 잡힌 큰 고기는 다시 놓아 준다. 큰 물고기는 예로부터 살던 곳의 주인이라 살려 준다는 것이다. 지정면 간현에서 잡았던 최고 기록인 90㎝짜리 잉어도 도로 놓아 주었다.

당연히 잉어 낚시에 달인이 됐다.잉어가 많이 잡히는 곳이라면 가보지 않은 곳이 없다. 소양강 상류인 양구 신남까지 갔으며 원주 횡성지역은 수시로 다녔다. 그는 “양구 신남은 잉어는 많은데 좋은 자리를 잡지 못해 많이 잡지 못했어. 자리가 중요하지”

요즘도 낚시를 가면 하룻밤을 새우고 온다. 지금의 나이에 상상키 어려운 일이다. “낚시는 낮에는 잘 안돼,밤이래야 잘되지. 그래서 하룻밤을 지내면서 해야 낚시를 했다고 할 수 있지.” 하룻밤을 새우는 이런 낚시를 할때는 낚싯대 옆에 텐트를 쳐 놓고 틈틈이 눈을 붙였다가 낚시에 달린 방울이 울리는 입질 소식이 오면 깨어 나 낚아 올린다.

하지만 낚시에서 고기를 잡든 못 잡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못 잡아도 신경쓰지 않으니 힘이 들지 않는다. “한번 낚시하고 오면 아주 편안해,그처럼 좋을 수가 없지, 최고야 낚시 한 번 하고 오는 날이면 기분이 확 풀려.”

물론 나이가 들면서는 혼자서 낚시를 다니지 못한다. 보통 큰 아들이 자주 함께 다닌다. 아버지의 취미 생활을 생각해 시간 날 때마다 모신다.

주위에 낚시를 즐기는 동료들도 종종 함께 다닌다. “낚시하는 사람들이 나를 너무 부러워해, 마누라하고 다니지 않고 아버지를 모시고 다닌다고 얼마나 아들을 칭찬하고 나를 부러워하는지, 내 복이지.”

인생의 동반자인 부인은 취미생활에서도 동반자다. 낚시 가는 날이면 미끼 등을 챙기는 따뜻한 내조가 있었기에 그의 취미 생활이 가능했던 것이다. 부인은 “옛날에는 낚시갈때 함께 많이 갔는데 요새는 귀찮아져서 안 가.”

이호준 할아버지의 건강한 삶의 요소 또 하나는 소식(小食)이다. 하루 세 끼 꼭꼭 챙기지만 소식을 지킨다. 오후 8시 이후에는 음식을 일절 입에 대지 않는다. 커피도 아침 점심 식사후 한잔씩 꼬박꼬박 마신다. 지금은 치아가 없어서 물렁한 것을 주로 즐기지만 음식을 특별히 가리지는 않는다.

그리고 또 하나의 비결은 숙면이다. 그는 오후 8시면 잠이 든다. 그리고 아침에도 부인이 깨워야 일어날 정도로 푹 잔다.

부인은 “어찌나 잠이 많은지 이해가 안 가. 늙으면 잠이 없다는데 우리 할아버지는 반대지. 지금도 내가 꼭 깨워야 일어날 정도야.”

청력이 떨어져 보청기를 끼고 골다공증에 허리가 좀 아플 뿐 거동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여태껏 큰 병치레 한번 없었다. “기껏해야 감기나 걸렸어, 원래 건강한 체질도 한몫을 하는 가봐, 나하고 팔씨름 한번 해 볼까.”

인터뷰중에 갑자기 팔씨름을 제안했다. 그의 손을 잡는 순간 백세 노인의 손힘이라고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았다. 그의 장담이 단순한 뻥은 아니었다. 건강한 기와 힘이 순간적으로 전해졌다.

그는 평안남도 강소 출신이다. 집안은 윤택했으며 어려서부터 한문서당에 다녀 천자문을 줄줄 외웠고 동네 사람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6·25한국전쟁이 그런 그의 인생을 바꿨다. 전쟁이 나자 집안사람들과 함께 피란을 떠났다. 며칠이면 끝날 거라 믿고 남쪽으로 떠났던 피란이 지금까지 고향 한 번 찾지 못하는 세월이 지났다.

남한으로 내려와 숱한 고생을 했다. 낯선 땅에서 먹고살기 위해 닥치는대로 일하면서 살다 원주에 정착했다. 원주에 정착하면서 그는 목공일을 배웠다. 봉산동의 지금 경찰서 앞쪽에 평남목공소를 차리고 부인과 함께 일했다.

창호와 문짝을 만드는 그의 꼼꼼하고 빈틈없는 솜씨로 적지 않은 고객을 확보했다. “당시에는 목공일이 인기는 없었지만 열심히 일했어. 할멈이 고생을 많이 했지, 일하는 사람이 있을 때도 있었지만 주로 둘이서 하다보니 말이야.”

그러나 아직도 고향 얘기를 하면 부인의 마음은 아프다. “고향이 있어도 못 가니 얼마나 불쌍해, 지금은 고향에 아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지만.”

그는 지금도 고향이 가끔 생각난다고 한다. 고향 사람들에 기억은 다 사라졌지만 고향 마을의 모습은 고스란히 가슴에 남아 있다고 한다.

건강 비결은 이뿐만이 아니다. 집안을 말끔히 정리하고 화초를 기르는데서도 나타났다. 집안 거실에 키우는 화초도 부부의 사랑을 받아 잘 자랐다. 시간 날 때마다 물을 주면서 손수 기른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부인이 소일삼아 하는 일도 도와준다. 부부간의 이런 금실 또한 그의 건강에 빼놓을 수 없는 자양분이다.

그는 부인의 욱하는 성격에도 늘 웃고 이해하는 낙천적인 성격이다.

부인은 “내가 성격이 불같아서 화를 내고 소리를 질러도 늘 그냥 웃으시니 싸움이 되질 않아, 그러니 혼자 소리치고 화내다 마는 거야.”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싸움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아름답고 소중한 부부간 사랑의 덕이다.

부부간의 그 사랑이 이호준할아버지의 건강과 윤옥년 할머니의 행복을 가져다주고 지켜주는 것이다.

김대중기자 kdjmoney@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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