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신년특집 신춘문예 당선작-시] 양을 찾아서

구녹원

마침내 양은 사라졌다

한 의식을 잃고서 나는 은주발에 담긴 눈*이 되고 싶었다

갈피가 다 바랜 경전 속에 없던 신이

밑창 닳아 낮아진 가죽신 아래에서 흘렀다

눈 내리는 게르 뒤란에서 그 의식은 치루어졌지

양 한 마리는 선택되었고

모든 자연의 의식 속에서 가장 무죄한 저 걸음걸이

죽음으로 걸어갈 때 누구라도 하늘을 보고 땅을 볼 것이다

단도가 양의 숨길을 통과하는 직전 그 눈은 검은 천으로 가리워지고

목자牧者 는 숨 털 한 올을 뽑아 속주머니에 소중히 간직한다

산자에게 건너간 울음소리, 가슴에서 질척이고

가장 조용히 자기를 버려 안식을 얻는 양의 침묵을 본다

양떼구름이 언덕으로 무리 지어 지나갈 때

두루마리 편지처럼 자꾸 도사리는 중얼거림들

대신 초원을 한 뼘 더 자라게 하는 울음소리가 하늘을 펼친다

만나고 싶은 얼굴이 생각날 때마다

나는 침상 캐시미어에 머리를 파묻고 싶었다

천년을 흐르는 구름도 있었다

양은 어디에 있을까

*벽암록 제 13 칙 파릉(巴陵) 은완리성설(銀椀裏盛雪)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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