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특집]시간이 켜켜이 밴 기와집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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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의 미학 <2> 춘천시 소양로

◇위부터 깨진 병을 붙여놓은 담벼락. 드라마 '겨울연가' 촬영지임을 알리는 포스터, 예스러움 그대로 간직한 골목길. 사진=이하늘기자 드론촬영=김대호기자

처마 밑 대롱대롱 시래기

까치밥 남긴 탐스러운 감

봄 제비 기다리는 빈 둥지

낙서로 가득메운 담벼락

1920년 도청·나루터 중심 조성

격동의 근현대사 이겨낸 터전

재개발로 곧 역사의 뒤안길로

처마 밑에 대롱대롱 매달아 놓은 시래기, 동네 꼬마들이 마구잡이로 낙서해 놓은 담벼락, 까치밥으로 남겨놓은 탐스러운 감, 초록 빨강 주황 알록달록한 대문, 봄에 올 제비 손님을 기다리는 빈 둥지. 와글와글한 시가지보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이곳은 춘천 봉의산 자락에 자리 잡은 기와집골이다. 기와집골은 일제강점기를 지나 6·25전쟁, 근현대사를 모두 겪어낸 역사의 현장이자 그 모든 것을 이겨낸 사람들의 삶 터전이다.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봉의산 아래 위치한 강원도청 자리는 19세기 후반 고종 25년(1888년), 이궁을 건축해 조정이 위급할 때 피난처 역할을 하는 곳으로 정하게 됐고 그 시점을 기준으로 지금까지 강원도의 살림을 도맡아 하는 관아(官衙)의 역할을 하게 됐다. 국가기관 옆에 자연스럽게 고을이 형성되듯 기와집골은 1920~1930년대 강원도청과 소양강 뱃나루터 사이에 사람과 물자가 활발하게 오가며 조성된 마을로 추측되고 있다.

모두가 살림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시절에 상당히 비싼 기와를 얹어 지붕을 만들어 지은 '기와집'이 모여 있는 마을인 만큼 이곳에 사는 사람은 신분이 높고 경제 상황도 풍족했을 것이라고 한다. 관(官)에서 일하는 군수와 교육감, 면장 등 공무직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주로 살던 곳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겨울연가(2002년)'의 준상이네 집을 나타내는 표지판을 지나 골목 어귀로 들어서면 좁은 골목 사이로 집집마다 내놓은 화분들이 옹기종기 앉아있고, 낯선 사람들의 발걸음에 컹컹 짖어대는 강아지의 울음소리가 정겹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다가 대문 앞에서 마주친 정영자(여·71)씨는 이곳에서 터를 잡고 산 지 20년이 된 만큼 마을해설사처럼 생생하게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여기는 지금보다 두 배 이상 큰 마을이었어. 지금은 재개발사업으로 주민들이 하나둘씩 떠나거나 남에게 임대를 주고 있지. 우리도 이사를 가야 할 터인데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세워놓은 계획은 없어. 남들이 보기엔 불편해 보일지 몰라도 우리 집이 최고지. 우리 손주가 방학을 맞아서 집에 와 있는데 재래식 화장실을 쓰면서도 불편함 없이 할머니네 집이 최고래.” 흐뭇하게 웃으시다 이어 자본주의에 익숙한 현대인들을 향해 정곡을 찌른다. “현대사람들이 너무 아파트, 아파트 하는데 사람이 똑같은 집에서 사는게 뭐 매력이 있나. 이곳도 사람이 살던 곳이고 낡은 골목길을 예쁘게 정비만 한다면 '춘천만의 오래된 마을'을 고스란히 후손들에게 남겨줄 수 있지 않겄어.”

시끌벅적한 대화 소리가 담을 넘어갔나 보다. 까치발을 들고 담벼락 위로 빼꼼히 얼굴을 내민 주민이 인사를 건넨다. 마주 보고 있는 내 집과 네 집을 오가며 반찬과 담소도 오갔을 것이고, 아이들은 사방치기와 공놀이와 대장놀이를 하며 미로처럼 이어지는 골목길을 누볐을 옛 모습을 상상해본다. 이제 기와집골 일대는 재개발을 통해 사라진다. 최신식 아파트단지가 들어설 예정이고 주민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하게 된다.

두 남녀가 기와집골을 구석구석 거닌다. 서울에서 '가장 춘천스러운 곳'을 보러 왔단다. 관광객 이도재씨는 재개발 소식에 한마디를 남겼다. “이제 춘천을 어디서 확인해야 하나요?” 미래의 후손들은 '춘천'을 어떤 모습으로 기억할까.

이하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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