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피플&스토리]“청년들 떠나지 않고…오랫동안 행복하게 사는 강원도 꿈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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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될 영화 '죽도서핑 다이어리'의 촬영 모습. 서핑과 강원도를 사랑하는 이현승 감독이 죽도해변을 배경으로 서 있다.이현승 감독은 겨울 장사가 힘든 상인들을 생각하면 바가지요금이라는 말 대신 성수기요금이라는 단어를 쓰자며 “강원도 사람 다 됐다”고 웃었다.(사진 맨 위 부터)

서핑이 좋아 2년 전 양양 현남면 정착 … 영화 '그대 안의 블루' '시월애' '푸른소금' 만든 이현승 감독

6년 전부터 양양에 터 마련해 놓고 드나들다

'아기 울음 대신 곡소리' 기사 보고 이주 결심

서울로 떠나는 젊은층 머물게 할 방안 절실

여행객·주민들 위한 중고책방도 만드는 중

죽도해변 배경 신작인 '죽도서핑 다이어리'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 초청 3일 첫 상영

7월 죽도해변서 3회째 '그랑블루 페스티벌'

산불 관련해 피해 지원금 기부 유도 구상중

“저 이제 강원도 사람 다 됐어요.”

영화 '그대 안의 블루', '시월애', '푸른소금'의 이현승(58) 감독을 춘천에서 만났다.

2017년 양양 현남면으로 주민등록을 아예 옮겨 지금은 '양양군민'이 된 그는 2일 개막하는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아 시네마 스케이프' 부문에 초청된 신작 '죽도서핑 다이어리' 막바지 작업에 한창이었다. 영화는 강원영상위원회 로케이션 인센티브 지원을 받아 양양에서 전체 분량이 촬영됐고, 3일 전주에서 처음 상영된다.

서핑 가는 듯한 차림으로 나온 그는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어떻게 양양주민이 된 건지 궁금하다.

“강원일보 기사에 언급된 적이 있다. 서핑을 정말 좋아해 6년 전부터 양양에 터를 마련해 놓고 수시로 드나들었다. 그러다가 2년 전 양양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강원도에 '아기 울음 대신 곡소리 더 많이 들려'라는 제목의 강원일보 기사를 본 후 완전히 정착하리라 결심했다. 바다를 좋아해 세계 곳곳 해변을 많이 다녔다. 한국 해변을 보면 평일에는 어르신들, 주말에는 젊은 사람만 가득하다. 마을의 어린아이부터 어르신들까지 모두 해변에 나와 있는, 마을이 순환되는 모습을 꿈꾼다.”

■ 8년 만에 신작이다. 어떤 영화인가?

“죽도서핑 다이어리는 국내 최초 서핑 영화다. 서핑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양양 죽도해변을 배경으로 서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죽도를 사랑하게 된 배우들(전혜빈·정태우·오광록)과 현지 서퍼들이 씨줄과 날실처럼 엮인 영화로 픽션과 다큐가 섞여 있다. 드라마틱하게 전개되지는 않지만 삶의 모습들이 잔잔하게 다가가도록 애썼다. 픽션과 다큐가 섞인다는 것이 어쩌면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나에게는 새로운 도전이다.”

■ 촬영장 분위기는 어땠나?

“현지 서퍼들이 연기를 너무 잘했다. 특히 12세 소녀 서퍼 '비주'의 인기가 폭발적이다. 그리고 배우들은 서핑을 아주 잘하지는 않지만 좋아하는 건 확실하다. 잘 못해도 서핑과 죽도의 매력을 알리려고 영화에 참여했다. 특히 배우 전혜빈씨가 큰 파도 속에도 거침없이 들어갈 정도로 열정 넘치고 멋진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반면 오광록 배우는 영화 속 캐릭터대로 실제로 슬렁슬렁(?)한데 사실 죽도에 제일 많이 온 배우다. 말도 없이 쓱 와서 있다가 쓱 간다.”

■서핑 때문에 양양에 정착했고 영화까지 찍었다. 그 매력은?

“서핑은 지구와 내통하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초등학교 때부터 바다가 지구의 4분의 3이라고 배워왔지만 우리는 계속 땅만 밟고 살았다. 그런데 조그마한 판때기 보드 하나에 의지해 바다에 떠 있다 보면 지구의 진동 혹은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정말 매력적이다. 그리고 사실 바다에 2시간 나와 있어도 타는 시간은 몇 분이 채 안 된다. 서핑은 기다림이다. 파도를 기다리고 생각하고 느끼는 거다. 그리고 절대 지루하지 않다. 서핑에 '이따가'는 없다. 파도, 수온, 바람이 계속 바뀌어서 매일 서핑을 해도 지겹지 않고 설렌다.”

■죽도해변에서 문화예술축제 '그랑블루 페스티벌'도 개최한다고 들었다.

“올해로 3회를 맞았다. 올해는 7월에 열 계획이고 5회 정도 하면 자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러 구상을 하고 있는데 지난달 산불과 관련해 야외에 마련된 극장에서 주말마다 상영회를 열고 티켓 대신 피해 지원금을 기부하게끔 하는 건 어떨까 구상 중이다. 내가 파랑을 정말 좋아한다. 오늘 입고 온 옷도 파랑, 데뷔작도 그대 안의 블루. 그래서 이름을 그랑블루로 지었다. 사실 '그냥 블루'라는 뜻인지도 모른다.”

■축제를 진행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사람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 처음에는 인력을 모두 서울에서 데려왔고 지난해에는 가톨릭관동대 학생들이 일부 도와주긴 했지만, 젊은이들이 강원도에 너무 없다. 다들 서울로 가는 게 이해는 되지만 그들을 머물게 할 방안이 필요하다. 강원도에 살다 보니까 이런 걸 고민하고 있다.(웃음) 도민들이 서울까지 가서 일하지 않고 도내에서 자리 잡아 영상·영화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겠다. 그리고 강원도가 가깝다는 것으로 많이 홍보하지만 그걸 강조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가깝다는 건 결국 왔다 가는 게 아니겠나. 삶을 같이할 수 있는 곳이 되면 좋겠다. 잠깐 머무는 것보다 몇 개월은 살아야 매력을 느낄 수 있지 않겠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죽도해변에 책방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중고책방을 만드는 중이다. 영화제 끝나고 이달 중 오픈할 계획이다. 파란책방으로 이름짓고 여행객, 주민들이 와서 쉬면서 책 보고 빌려가고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신참 도민으로서 오랫동안 떠나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강원도를 위해 머리를 맞대겠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서점이 적자를 볼 수도 있다. 영화제를 양양에서 하면 교통비 등 때문에 서울보다 돈이 훨씬 많이 든다. 그럼에도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잘된다고 마냥 행복해하지도, 안 된다고 망연자실하지도 않고 그저 덤덤히 하고 싶은 일들을 해 나가겠다.”

▶이현승 감독은

△1961년 서울生

△홍익대 시각디자인 학사, 고려대대학원 광고홍보 석사

△1992년 영화 '그대 안의 블루'로 데뷔.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1995년)', '시월애(2000년)', '푸른소금(2011년)' 등 연출

△제14회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미술상, 제4회 이천 춘사대상영화제 신인감독상, 제31회 대종상 영화제 의상상·미술상 등 수상.

△제1대 경기공연영상위원장, 미쟝센 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 제3기 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 등 역임

△현 중앙대 공연영상창작학부 교수

이현정기자 together@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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