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강원도]서핑을 통해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견디는 이야기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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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한은형의 서핑하는 정신

서핑은 곧 ‘양양’이다. 이 코너에서 소개한 문진영의 ‘딩(Ding)’에서도 굳이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서핑의 성지’라고 했을 때, 누구나 ‘양양’을 떠올렸을 것이다. ‘파블로프의 개 실험’처럼 말이다. ‘딩’에서는 양양을 K마을로 표현하며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가인 한은형이 2022년에 펴낸 소설 ‘서핑하는 정신(작가정신 刊)’에서는 대놓고(?) 등장한다. 양양에 대한 사랑이 담긴 소설이랄까. 아니 ‘서핑에 대한 사랑’이라는 표현이 더 낫겠다.

멋들어진 해변 옆에 내 소유의 아파트가 생긴다면, 이 얼마나 멋진 일일까. 그곳에서 서핑을 배우고, 점점 변화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면.... 소설 ‘서핑하는 정신’은 그런 이야기다. 주인공은 이제이.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그에게 생각지도 못하던 아파트 한 채가 생긴다. 그것도 해변에. 하필이면 양양 해변에. 주인공은 큰이모, 김향신님이 남긴 유산을 핑계 삼아, 한 번도 써 본 적 없는 7일간의 ‘급행 휴가’를 내고 양양을 향한다. 2020년 12월 23일. 크리스마스 이브의 이브 날이었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연일 최고치를 기록하는 3차 대유행의 시기를 지나고 있을 때 감행한, 말 그대로 도시탈출. 일상탈출이었다. 그것은 코로나 19에 포위된 채, 몰려오는 일과 바쁜 일상에 지쳐버려 ‘번 아웃’이 온 제이에게는 탈출구 같은 것이었다. 사실 제이는 하와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파도를 연구하는 일을 했는데도 서핑에는 좀처럼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7번 국도를 타고 도착한 양양에서 서핑을 배우게 된다. 그것도 내 고향의 한 휴양지 이름을 따라한 그 곳에서.... 이쯤되면 분명 운명인 게 확실하다. 아무튼 함께 수업을 듣는 허세 가득한 해파리, 양양맥주를 만들겠다는 돌고래, 옷장사를 하다 망한 우뭇가사리, 까칠하지만 솔직한 상어 회원 등과의 서먹한 분위기도 잠시, 내 안을 들여다보는 ‘에고서핑’의 시간을 지나치며 비로소 언 마음을 녹이게 된다. 그런 그들 사이에 일상의 모든 것을 훌훌 벗어던지고 도시탈출을 감행, 양양까지 달려온 나는 점차 그들 사이에 섞이게 된다.

이 소설은 본격적으로 서핑을 하는 소설이라기보다는 서핑을 시작하기까지와 서핑을 하고 난 후에 방점이 찍히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속 표현대로 서핑이란 “서핑을 하기 전, 하는 중, 하고 난 이후의 삶”까지를 아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서핑을 배워가는 과정을 삶의 순간 순간으로 은유하고 치환하는 작업을 이 소설에서 선보인다. 작가는 “파도타기 스포츠의 일종인 ‘서핑’이라는 소재를 통해 현실에서 실시간 재생되는 우리 일상의 이야기들을 따듯한 필치로, 그러나 사실감 있게 담아낸다”며 “하루하루에 진심을 다해 살았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실패와 좌절을 겪기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그럼에도 나를 나이게 하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이들의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소설을 읽다 보면 대표적 서핑 스폿 인구해변 부터 죽도해변, 동산해변, 기사문항 등 양양 곳곳의 지명이 반갑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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