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전공의 복귀 설득했다" 대학병원 교수 사진·실명 공개 '조리돌림'…경찰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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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경찰에 수사 의뢰…'명예훼손·모욕' 등 혐의 적용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의 집단 사직이 가시화하는 가운데 19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 관계자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속보=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으로 '의-정(醫政) 갈등'이 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전공의들이 일부 복귀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학병원의 교수 사진과 실명을 공개하는 '조리돌림' 글이 의사 커뮤니티에 게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20일 보건복지부는 이같은 사례를 적발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경찰은 입건 전 조사(내사) 중이다.

의대생과 젊은 의사 중심의 인터넷 커뮤니티 '메디스태프' 등에는 최근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 중 일부가 복귀한 것으로 알려진 대학병원 교수들의 실명과 사진이 담긴 글이 올라왔다.

이들 교수가 전공의들에게 돌아오라고 설득했다는 것인데, 실제로 각 학교에서 많은 전공의가 복귀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해당 게시글에는 "이들을 기억하겠다"는 등 경고성 발언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법률을 검토해 정식 수사로 전환할지를 검토하고 있다. 명예훼손, 모욕 등의 혐의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 커뮤니티에는 현장에 남아 환자 곁을 지키는 전공의를 '참의사'라고 조롱하며 개인정보를 공개한 글이 올라와 논란이 됐다.

이 글에는 전국의 70여개 수련병원별로 의료 현장을 떠나지 않은 전공의들의 소속 과와 과별 잔류 전공의 수로 추정되는 정보가 상세히 적혀 있었다.

또한, 이 커뮤니티에는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파견된 군의관과 공중보건의사(공보의)에게 '업무 거부 방법'을 안내하는 지침도 올라왔었다.

복지부는 이 안내 지침을 병원의 정상적인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로 보고 강하게 대응하기로 했고, 경찰은 이 글 작성자들을 업무방해 혐의로 입건해 정식 수사에 착수했다.

지난 12일에는 온라인 커뮤니티 2곳에 파견 공보의들의 성명을 가린 채 근무 기관과 파견병원 등을 명시한 내부 문건이 게시돼 복지부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기도 했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내고 근무현장을 이탈한 지 한 달이 넘은 가운데 19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을 찾은 시민이 고개 숙이고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2024.3.19. 연합뉴스.

경찰은 집단행동과 관련해 의료계의 각종 불법행위를 파악하고자 첩보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온라인 게시글에 대한 모니터링을 확대하고, 관련 업종 종사자 등을 폭넓게 접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날 정부가 전국 의과대학별 정원 배정을 발표하자 의사단체, 전공의단체, 의대 교수들이 향후 대응 방안 논의를 위한 회의를 갖는다.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전국 의과대학 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정부의 의대 정원 배정 결과를 안건으로 삼아 이날 오후 8시 온라인 회의를 연다.

이번 의정 갈등 사태가 촉발한 후 의사들을 대표하는 3개 단체가 함께 머리를 맞대는 것은 처음이다.

정부가 의대 '2천명 증원'을 확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반대해온 의사 사회 내에서 '최후의 수단'을 강구할 것으로 보인다.

전날 박단 대전협 회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내일 서울에서 대한의사협회, 전국 의과대학 교수협의회 선생님들을 만나려 한다"고 밝혔다.

이어 "대전협에서 진행한 설문조사 상 지난 18일 기준 응답한 98개 전공의 9천929명 중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전공의는 308명(3.1%)으로 확인된다. 일주일 전인 지난 11일 기준 근무 인원이 303명이었던 것을 미루어 보아 큰 변화는 없다"며 "여기저기 흩날리는 말은 많지만, 전공의와 학생은 정적이다"라고 덧붙였다.

◇전공의 집단행동이 한 달간 이어지고 있는 19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 전공의들의 빠른 현장 복귀를 기원하는 벽보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전국 의대 교수들은 정부가 의대 증원을 철회하지 않으면 집단사직하겠다며 '최후통첩'을 했고, 동맹휴학을 결의한 의대생들은 올해 당장 현역병으로 입대하겠다며 '군 휴학'까지 거론하고 있다.

의대 교수들의 사직서는 수리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의대별 정원 배정 발표 후 이들이 모종의 '집단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렇듯 의정 갈등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의협은 새 회장을 뽑는 선거에 돌입했다.

의협이 개원의 중심의 단체여서 의료계 안팎에서 대표성에 대한 의심이 강하지만, 의료법이 정한 법정단체라는 점에서 선거 결과가 향후 의료계의 대정부 투쟁 방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의협은 이날부터 사흘간 전자투표 방식으로 제42대 회장 선거를 실시한다. 임기는 3년이며, 제한 없이 연임이 가능하다.

후보는 박명하 서울시의사회장 겸 의협 비대위 조직강화위원장, 주수호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 박인숙 전 국회의원, 정운용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부산·경남지부 대표 등 5명이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다득표자 2명을 두고 25∼26일 결선 투표를 한다.

의협은 의료법이 규정한 법정단체로, 의사들은 의사 면허를 받으면 자동으로 가입된다.

이에 따라 회원 수가 13만8천명에 이르지만, 실제로 투표를 할 수 있는 회원은 5∼6만명 수준이다. 회비를 내는 회원은 60% 수준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정 기간 회비를 꾸준히 내야 투표권을 갖는다.

◇대한의사협회 회장 선거를 하루 앞둔 1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에 관련 포스터가 붙어 있다.의협은 내일부터 22일까지 회장 투표를 진행해 과반 득표자를 당선인으로 선출한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다면 다득표자 2명을 두고 25∼26일 결선 투표를 진행한다. 2024.3.19.연합뉴스.

후보의 대부분이 강경파여서 의료계에서는 누가 회장이 되더라도 대정부 투쟁의 수위가 높아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5명의 후보 중 의대 증원에 찬성하는 후보는 정 대표뿐이며, 다른 후보들은 그동안 의대 증원을 둘러싼 갈등 국면에서 정부를 향해 독설에 가까운 비난을 퍼부었다.

임 회장은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의 말실수를 '의새 논란'으로 부각시킨 바 있으며, 전날에는 조규홍 복지부 장관과 박 차관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지난 18일 복지부로부터 면허정지 처분을 받은 박 회장은 전날 입장문을 내고 "향후 추가적인 행정처분, 경찰과 검찰의 부당한 압박에도 흔들림 없이 저지 투쟁에 선봉에 설 것"이라고 밝혔다.

후보 중 주 위원장과 박 회장, 임 회장 등 3명은 이번 의정 갈등 상황에서 정부로부터 고발당한 인물이다.

의협은 지금까지는 집단행동을 구체화하지 않았지만, 차기 회장 선출을 계기로 '파업'이라는 이름으로 집단 휴진을 하거나 야간·주말 진료 축소 같은 집단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크다.

◇전공의 집단행동이 한 달간 이어지고 있는 19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한 의료 관계자가 환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4.3.19. 연합뉴스.

다만 의협이 집단행동을 나서더라도 의료계 대표성 논란으로 입지가 약해진 상황이나, 집단행동 참여율이 높지 않았던 과거의 사례를 고려하면 파급력이 제한적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교수는 "현 사태에서 의협이 대표성을 잃은 지 오래"라며 "정부의 대화 상대는 당사자인 전공의나 이들이 속한 수련병원 교수들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지난달 28일 의협이 의료계 대표성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의료계에서 중지를 모아 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조 장관 역시 같은 달 29일 "의협에는 개원의들의 목소리가 많이 반영됐는데, 필수의료 확충과 관련해서는 상급종합병원, 종합병원의 목소리와 젊은 의사들의 의견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2020년 의협이 정부의 의대증원 추진에 맞서 집단휴진을 했을 당시 참여율은 10%가 채 되지 않았다. 당시 전공의들의 집단행동 참여율이 80%를 넘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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