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언중언]‘할렘 르네상스’

1920년대의 미국 ‘할렘 르네상스’는 흑인의 목소리가 집단으로 표출되고 백인에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1865년 남북전쟁 후 공식적으로 노예해방이 이뤄졌지만 현실과의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었다.이때 알랜 로크나 듀 보이스와 같은 흑인 지식인들이 흑인문화에 대한 긍지와 자아의식을 호소했다.듀 보이스는 흑인 문학사의 고전인 ‘흑인민중의 영혼(1903년)’에서 “흑인의 영혼은 백인의 가치로 측정된다”며 흑백 문제를 꼬집었다.▼흑인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통해 흑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긍지를 표출했다.이러한 움직임은 연극분야에서도 나타났다.‘미국 사회에서 흑인의 존재는 무엇인가’라는 흑인의 상황에 대한 비판적 물음에서 출발, 이들이 당하는 편견과 차별 등 인종적 어려움을 스스로 타파하고 계몽하는데 목적을 두었다.이 같은 노력이 백인의 관심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 백인 작가들 또한 흑인을 주제로 한 작품을 쓰는데 나섰다.그 대표적 인물이 유진 오닐이다.▼오닐은 백인이 독점했던 연극 무대에 흑인 주인공을 최초로 등장시켰다.이전의 정형화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다양한 성격을 지닌 극적 인물로서 흑인의 모습을 그렸다.첫 해양극인 ‘갈증(1913년)’에서는 그가 직접 흑인 역을 맡기도 했다.‘꿈꾸는 아이(1919년)’에서는 백인이 연출하는 극단에서 흑인 배우가 의미 있는 역할을 한다.‘신의 아이들은 모두 날개가 있다(1924년)’는 흑백 간 결혼을 주제로 흑인의 아픔과 고뇌를 부각시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오닐은 흑인의 열등감과 백인의 우월성에 대한 관념이 허구적인 이데올로기라고 지적했다.흑백 구분의 기준이 얼마나 작위적인가를 표현주의 기법으로 묘사했다.엘리엇은 그의 작품에 대해 “폭넓게 흑인 문제를 적용했고 흑인을 결코 빗나가지 않게 표현했다”고 평했다.미 대선에서 오바마가 승리, 첫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다.신분을 결정짓는 요인이 인종이라는 오닐의 통찰력을 이제야 극복했다.할렘의 ‘정치 르네상스’ 실현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장기영논설위원·kyjang@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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