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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알몸앵커'

이옥경. 최초의 한국인 여성 아나운서다. 일제강점기 경성방송국이 처음 전파를 발사하기 1년 전인 1926년 시험방송부터 일을 했다. 그가 아나운서로 취직한 것은 남편 노창성에 대한 일종의 '내조'였다. 시험방송 기술자로서 “지금은 시험방송 중입니다”라는 멘트를 직접 해야 했던 노창성은 '가냘픈 여자의 목소리가 아쉬워' 여성 아나운서 채용을 상부에 건의했다. 적합한 여성을 찾지 못한 조선총독부 체신국에 자신의 부인을 추천, 이옥경이 특채됐다.

▼두 번째 여성 아나운서는 마현경이다. 전주 출신으로 서울에서 경성여고를 졸업했다. 그는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갖게 된 의미를 '직업 부인'이 되어 경제적으로 독립적인 위치가 된 데서 찾았다. “직업을 붙들게 돼 저의 생활은 새로워졌습니다. 직업 부인이 된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남자와 같은 권리를 가지는 것입니다. '아나운서'는 조선에 처음 되는 직업이요….” 이들을 포함해 8·15광복까지 18년간 여성 아나운서는 모두 6명이었다.

▼거의가 단발의 현대적인 외모였다. 당시 단발은 모던걸의 상징이었다. 여성 앵커의 단발은 근대 과학문명을 상징하는 라디오의 이미지와 교차하며 근대로 진입하는 자연스러운 행위로 간주됐다. 이 시기 아나운서는 '말장수'라는 '색다른 직업'으로 표현됐다. 여자 아나운서의 직무는 “꾀꼬리처럼 목소리가 아름답고, 앵무새같이 청산유수로 말을 잘하는 일”로 인식됐다. 고임금의 최첨단 직종으로 신여성들이 선망하는 대표적인 직업이었다.

▼아나운서는 이 시대의 여대생들에게도 인기 있는 직업 중 하나이며 최고의 신붓감으로 꼽히는 직업인물이다. 이미지와 역할도 바뀌었다. 뉴스를 진행하는 엄숙한 아나운서의 전형에서 벗어나 엔터테인먼트 영역으로 진입하며 기능이 다양해졌다. 물론 젊은 미모의 여성이 그 중심이다. 최근 여성 앵커가 알몸으로 나오는 네이키드 뉴스의 국내 서비스가 시작됐다. 첫 여성 아나운서 등장 후 84년. 비록 인터넷 매체에 출현했으나 여성 앵커의 이미지 진화의 끝이 궁금하다.

장기영논설위원·kyjang@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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