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중언

[언중언]별장에서 생긴 일

해마다 피서철이면 으레 방송 전파를 통해 들려오는 노래가 있다. 영화 '피서지에서 생긴 일'의 OST(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썸머 타임'이다. 1959년 미국에서 개봉된 이 영화는 사랑 없는 결혼을 했던 부모의 가슴 아린 추억과 그들의 자녀, 틴에이저의 맑고 순수한 사랑을 절절하게 그려내 전 세계 하이틴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영화의 배경인 해변 풍광이 백미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 피서지 하면 떠오르는 곳이 동해안 화진포다. 1930년대 한 신문에 실린 기사에 그 모습이 적나라하다. “'양코'들이 원산 명사십리(明沙十里)에서 별장을 떠가지고 화진포 호변으로 와서 게딱지 같은 어촌을 씨러버린 후 날러갈 뜻한 층층집을 짓고 히히낙낙(喜喜)거린다”고 했다. 여기에 북한 치하 때의 김일성 주석 별장과 이승만 대통령 별장이 불과 1.5km 거리를 두고 나란히 위치해 있다. 서로가 주적이었지만 심신의 안락을 누리고 싶은 욕구는 어쩔 수 없었는가 보다.

▼ 남한강변의 한 별장에서 벌어진 해괴한 일이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형언하기조차 거북한 고위층들의 추태다. 여기서 발생한 성폭행 고발사건의 전모가 속속 드러나 성접대, 환각파티, 권력형 비리까지 제기되고 있다. 일파만파, 점입가경이다. 현장에 있었다고 지목된 법무부 차관이 취임 6일 만에 자진 사퇴해 인사검증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난이 난무하고 있으니 어디서부터 썩었는지 분간하기 어렵다.

▼ 별장은 분명 여벌이다. 시중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서민들은 고단한 몸조차 편히 뉠 공간을 마련하기도 힘든 형편이다. 억장이 무너질 만도 하겠다. 호화별장에서의 추태로 인해 한적하고 고요했던 강변마을이 온통 벌집을 쑤셔놓은 듯 뒤숭숭하다는 소식이다. 귀거래사(歸去來辭)는커녕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했던 루소의 말도 무색해졌다. 사정기관의 원칙과 신뢰가 걸린 향락의 말로를 주시한다.

용호선논설위원·yonghs@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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