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소설]세기의 사냥꾼(5469)

  무산의 포수마을(1)

 한반도 동북쪽 끝에 세모꼴의 광대한 산림이 있다. 두만강이 가장 긴 위 쪽은 북변이 되고 왼쪽 서변은 마천령산맥 바른쪽 동변은 함경산맥이 된다. 사람들은 그곳을 무산산림이라고 불렀는데 북한사람들과 만주사람들은 무산의 수해(樹海)라고 부른다. 바다처럼 넓은 원시림이었다. 한랭지역이었으며 침엽수들이 울창했기 때문에 많은 짐승들이 살고 있었다. 만주나 한반도에 살고 있는 짐승들은 거의 그곳에서 살고 있었다. 큰 짐승만으로도 멧돼지 사슴 노루 산양등이 살고 있었고 그들을 노리고 범 표범 불곰 이리들이 돌아다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곳을 짐승들의 나라라고 부르면서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곳에 사람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땅이 없는 가난한 농민들이 산림 변두리에 들어가 산간마을을 만들었다. 마을이래야 열명에서 서른명정도 되는 사람들이 손바닥만한 경사지를 일구어 옥수수 조 감자들을 심어 살고 있었다. 또다른 주민들도 있었다. 지주들에게 착취를 당하고 관리들에게 수탈을 당한 농민들이 죽지 못해 그 산중에 들어와 살고 있었다. 화전민들이었다.

 수백명에 불과했으나 또다른 사람들도 살고 있었다. 목숨 아까운 줄을 모르는 함경도의 사냥꾼들이 산림 깊숙한 곳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고종이 즉위하고 흥선대원군이 집권을 한지 2년쯤되던 1865년 늦가을에 마천령산맥 동쪽에 있는 어느 야산에서 야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의금부의 군관 박사원과 강원도 포수 이경학이었다. 박사원은 아직 30대의 소장무관이었으나 지방 호족들의 실태와 비행을 조사하는 유능한 조사관이었으며 활과 창을 잘 다루기로 이름이 나 있었다. 이경학은 범과 표범을 여섯마리나 잡은 포수였으며 그때 특별히 선발되어 박사원을 돕고 있었다.

 그들은 대원군의 밀명을 받고 있었다. 함경도의 호족 장성대와 그 아들들의 움직임을 조사하고 그들의 비행을 적발하라는 지시였는데 조사는 관헌들도 모르게 비밀리에 하라는 당부였다. 지방관헌에 그 사실을 알리지 말고 그들의 도움도 받지말라는 엄명이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함경도의 호족 장성대는 예사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집안은 당상관에 해당하는 양반대접을 받고 있었으며 사병(私兵)을 거느릴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었다. 그의 선대들은 한반도 북쪽을 넘나드는 왜적들과 싸우면서 허다한 공을 세웠다.

 형식적으로는 관헌과 합동으로 왜적토벌을 하기로 되어있었으나 사실은 사병들이 그 일을 맡았다. 그래서 조정은 비공식이기는 했으나 장성대의 선대에게 종3품에 해당하는 벼슬을 내렸고 장성대는 그것을 이어받고 있었다. 그 고장 수령은 물론이고 감찰사까지도 부임인사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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