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청봉] ‘우먼 인 골드’ 그리고 쉼표 찍은 환지본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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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권분쟁 겪은 미술품
국가로부터 되돌려 받아
해당 실화 영화로 제작돼
...
실록·의궤 평창 귀환까지
숱한 좌절 이겨내고 해내
기록문화 새길 열어갈 때

세계적인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1862~1918년)의 작품 하나가 유럽에서 논란의 중심에 선 적이 있었다. 1907년에 제작된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이 그 주인공이다. 이 작품은 클림트가 자신의 후원자였던 ‘아델레’를 모델로 그린 것으로 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강렬한 인상을 주는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황금의 연못에서 아델레가 수련처럼 피어오르는 것 같다”는 표현으로도 유명한 작품으로 국내 한 의약회사에서 진통제를 판매하면서 이 그림을 약 박스에 새겨넣는 아트 마케팅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클림트의 대표작인 이 작품은 작품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국가와 개인이 갈등을 겪으며 오랜기간 소송전을 펼치는 등 부침을 겪어야 했다.

이 내용을 영화화한 것이 2015년에 개봉한 영화 ‘우먼 인 골드(Woman in Gold)’다. 이 영화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클림트는 자신의 후원자 아델레를 모델로 한 작품을 완성해 그에게 선물한다. 하지만 아델레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남편 페르낭드는 나치에게 작품을 몰수 당하고 만다. 나치의 점령이 끝난 후 아델레의 유언에 따라 이 작품은 오스트리아 정부에 기증되지만 페르낭드는 이 그림을 조카들에게 남긴다는 유언을 남기고 생을 마감하고 만다. 그들의 조카인 마리아 알트만은 1998년 이 사실을 알게 되고 이 그림을 오스트리아의 미술관에서 되찾아 오기 위한 8년에 걸친 기나긴 법정 싸움을 벌이게 된다. 미국에서 소송을 시작한 마리아는 변호사 랜디와 오스트리아에 중재 요청을 하고 결국 68년 만에 작품을 되돌려 받게 된다.

이번에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과 의궤의 환지본처(還至本處) 기념행사를 지근 거리에서 지켜보면서 문득 떠올려진 영화가 바로 ‘우먼 인 골드’다. 8년 전 이 영화를 보며 상식과 진리에 대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추상(秋霜) 같은 국가를 대상으로 한 개인 그리고 그의 변호사가 보여준 고군분투를, 흥행을 위한 영화적 장치로만 생각했다가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저 부럽기만 했던 기억이 있다.

2006년과 2011년 일본에서 돌려받은 실록과 의궤의 환수과정을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비틀어 “영혼이 있는 계란은 바위도 쪼갤 수 있다”라는 표현으로 치환한 스님의 말씀이 오대산으로의 귀향까지 이어질까 고민이 깊어지기도 했었다. 항온·항습이 가능해야 하는 시설 문제, 연구 문제 등이 정부가 꺼내든 한결 같은 메시지였다. 오래 전 문화재청에 취재를 위해 전화를 건 적이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담당자의 말은 강원도에서는 아직도 그런 것이 이슈냐는 떨떠름한 반응이었다. 문화재 제자리 찾기를 외치는 우리를 두고 이기적이라 하며 문화재는 교통이 편리한 서울에 있어야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발하는 어느 학자의 외침 앞에서는 할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약탈문화재의 창고를 미술관이나 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과거 제국주의자들의 사고를 고스란히 갖고 있는 그들의 말 앞에서는 절망해야 했다. 솔직히 그 절망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2011년 이후 10년 만에 2021년 범도민 환수위원회를 월정사와 강원일보가 다시 결성할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월정사를 중심으로 한 민간에서의 끊임없는 문제 제기는 철옹성 같던 정부의 입장을 그야말로 드라마틱하게 바꿔 놓을 수 있었다. 그 사이 지쳐버린 이도 많았지만 쉼없는 우리의 도전은 결국 오대산사고본 실록과 의궤를 고향 평창으로 모셔오기에 이르렀다. 마침표를 찍어야 할까…. 쉼표와 함께 이제부터 기록문화도시, 그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가야 할 때다. 클림프의 작품이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준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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