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리뷰]창극 ‘내 이름은 사방지’

“나를 두고 여성이냐 남성이냐 묻는다면…내 이름은 사방지”

◇조선시대 성소수자 ‘사방지’의 일생을 기록한 파격 창극 ‘내 이름은 사방지’가 지난 21일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막을 올렸다. 사진=과천문화재단 제공

“내 이름은 사방지. 나 사방지는 거기에 있었다고 이른다.”

조선시대 성소수자 ‘사방지’의 일생을 기록한 파격 창극 ‘내 이름은 사방지’가 지난 21일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막을 올렸다.

연분홍색 옷자락을 하늘거리며 사방지 역을 맡은 김수인이 무대에 등장하자 관객들은 모두 숨을 죽였다. 사내인 동시에 계집이라서, 계집인 동시에 사내라서, 사내도 계집도 아니라서…박해와 멸시에 시달려야 했던 사방지. 그가 혐오로 점철된 고달픈 인생을 판소리로 회상했다.

◇‘사방지’ 역을 맡은 김수인. 사진=과천문화재단 제공

푸른빛 조명과 거문고, 피리, 단소 등의 선율이 어우러진 무대는 관객들을 수백년 전 어느날로 데려갔다. 탯줄에 목이 감긴 채 절에 버려진 사방지는 엄마 스님의 손에 길러졌다. 연지를 찍어 바르며 웃음을 터뜨리던 행복한 시절도 잠시, ‘양성구유(남녀의 성징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상태)’의 몸이 세상에 알려지자 치욕과 모멸의 삶이 시작된다.

사방지의 유일한 친구는 이물 취급을 받던 코끼리 ‘고상이’었다. 고상이과 무릉도원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방지의 꿈이 무대 스크린에 거친 선으로 표현돼 애틋함을 더했다. 극은 무대 위 소품을 덜어내고 막이 바뀔 때마다 동양적인 배경과 글씨를 활용했다.

◇‘홍백가’ 역을 맡은 박애리. 사진=과천문화재단 제공

국악계를 대표하는 소리꾼들의 연기도 관객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국악계의 프리마돈나 박애리가 생존을 위해 남장을 택한 ‘홍백가’ 역을 맡아 여성의 한을 풀어냈다. “여자로 산다는 건 살아남았다는 것”…홍백가가 토해내는 절규 같은 소리에는 살아남기 위해 남성과 여성을 넘나들었던 그의 삶이 녹아있었다.

유태평양과 전영랑도 사방지가 마음에 품었던 ‘화쟁선비’와 관능적인 기생 ‘매란’역을 맡아 에너지 넘치는 연기를 선보였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던 연인과 가질 수 없는 사랑에 파멸의 길을 택한 사방지가 난세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과정을 절절한 소리로 풀어냈다.

◇‘화쟁선비’ 역을 맡은 유태평양. 사진=과천문화재단 제공
◇‘매란’ 역을 맡은 전영랑. 사진=과천문화재단 제공

극의 막바지, 사방지는 연분홍색 옷 대신 검붉은 보라색 옷을 걸쳤다. 남성과 여성 그 사이에서의 방황, 사람에게 받은 상처와 분노, 사방지가 뱉어내는 울음같은 고백이 관객들의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사내가 보이느냐, 계집이 보이느냐?” “제가 보이지요”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끝내 존재를 인정 받지 못했던 사방지. 다른 것을 틀리다 말하는 사회의 견고한 차별의 벽과 무력한 개인의 모습은 비단 조선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사방지가 이 시대를 살아간다며, 그의 삶을 달랐을까? ‘내 이름은 사방지’가 수백년의 시간을 지나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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