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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야절경]바다와 어우러진 산비탈 논골담길의 밤과 낮

동해 묵호 논골담길

◇밤이면 묵호등대와 오징어배의 불빛의 어화(魚花)로 현란했고, 낮이면 탁 트인 동해바다와 배들이 오가는 묵호항을 내려다보이는 논골담길.

동해 ‘논골담길’은 묵호항에서 묵호 등대를 오르는 산동네 길이다.

1941년 개항된 묵호항의 역사와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언덕 꼭대기에 있는 묵호등대는 1963년부터 묵호 앞바다의 길잡이가 되어 주고 있다.

묵호항은 예부터 고기잡이가 잘되었는데 어부들이 던져주는 물고기를 얻으려고 온갖 새들이 몰려들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싸움을 잘했던 까마귀가 하늘을 뒤덮었다고 전한다. 물과 바다가 검고 까마귀도 많아 검을 묵(墨)자를 써서 묵호라 했다고 전해진다. 또 선비가 잘 난다고 전해 글과 묵을 뜻하는 한묵(翰墨)의 의미로 묵호라 지었다는 설도 있다.

과거 묵호항 일대는 크게 번성했던 어촌 마을이었다. 일제강점기인 1937년 개항한 이래, 묵호항은 삼척·태백 지역에서 생산되는 석탄과 시멘트를 실어 나르며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국제 무역항으로 성장했다. 게다가 명태와 오징어 등이 많이 잡히면서 자연스레 전국에서 몰려든 선원과 장사꾼, 관광객, 그리고 지역 주민들이 한데 어우러져 항상 문전성시를 이뤘다.

묵호항의 전성기 당시, 아랫마을에는 뱃사람들이 주로 살았고 윗마을에는 명태를 말리는 덕장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따라서 항구에서부터 덕장이 있는 마을 꼭대기까지 명태를 옮기려면 구석구석 이어진 좁은 흙길을 따라 이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 그 때문에 골목길은 늘 질퍽질퍽할 수밖에 없었고 이후 ‘논골’이라고 불리게 됐다.

논골담길은 등대오름길, 논골1길, 논골2길, 논골3길 등 네 골목으로 나뉘어 묵호등대로 오를 수 있다.

말 그대로 사람과 돈이 넘쳐나던 곳. 골목에그려진 지폐를 물고 있는 진돗개의 벽화를 보면, 전성기 당시 묵호항이 얼마나 번성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현재는 명태가 전혀 잡히지 않고 있지만, 아직까지 마을 꼭대기에는 명태를 주욱 널어 논 커다란 덕장을 볼 수 있다.

1980년대에 들어서 석탄과 시멘트의 물동량이 점점 줄어들고 명태와 오징어의 어획량마저 급감하면서 묵호항은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석탄산업이 사양산업으로 접어들고 마을 사람들이 주업으로 삼았던 명태 덕장이 문을 닫으면서, 묵호항의 어부와 그의 가족의 터전이던 묵호동도 급속도로 낙후되어 갔다.

허름한 어촌 마을이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0년 8월부터 논골마을 담벼락에 그림이 입혀지기 시작했고, 이 논골담길 벽화에는 바다마을 사람들의 고단한 삶과 역사가 되새겨져 있다.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산비탈 골목길을 따라, 묵호만의 애환을 담은 ‘논골담길’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묵호등대 광장에서 곧장 통하는 도째비골 스카이밸리는 묵호등대와 월소택지 사이 골짜기에 전망시설과 각종 체험시설을 조성한 관광지다. 비 내리는 어두운 밤이면 도깨비불 같은 푸른빛이 발견된다 하여 ‘도째비(도깨비)'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59m 높이 투명 바닥 전망대, 하늘 위 자전거, 자이언트슬라이드 등 체험을 즐길 수 있다.

밤이면 묵호등대와 오징어배의 불빛의 어화(魚花)로 현란했고, 낮이면 탁 트인 동해바다와 배들이 오가는 묵호항을 내려다보이는 논골담길. 그 속엔 매일 새벽 오징어와 명태를 가득 실어 나르던 어선들로 활기를 띠었던 묵호항을 배경으로 살아온 동해의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가 구석구석 배어있다.

◇밤이면 묵호등대와 오징어배의 불빛의 어화(魚花)로 현란했고, 낮이면 탁 트인 동해바다와 배들이 오가는 묵호항을 내려다보이는 논골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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