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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대경]기후변화 예방 버팀목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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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순 수필가

누구나 마음 밭에 나무를 심는다. 어떤 사람은 높이 자라는 나무를 심었고, 또 다른 이는 열매가 많은 나무를 심었으며, 누군가는 사계절 푸른 나무를 심었을 것이다. 작은 씨앗 한 톨이 싹을 틔우고 튼실한 재목으로 성장하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뿌리를 내리는 순간 나무는 그 자리가 운명이 된다. 살아서는 더 이상 이동할 수 없기에 비가 오면 온몸으로 맞고, 바람이 불면 흔들리며, 한여름 땡볕과 한겨울 추위를 견디며 홀로서기를 한다. 정착한 땅이 아무리 척박할지라도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아내고 그곳을 기름진 땅으로 바꾼다.

나무는 끝없이 침묵하며 안으로 나이테를 새긴다. 한 해 동안 겪었던 자신만의 이야기를 딱 한 줄로 동그랗게 함축한다. 연륜이다. 쑥쑥 자랐던 여름 이야기는 밝고 넓게 그리지만 혹한의 겨울은 어둡고 촘촘하게 묘사한다. 어린 시절의 꿈을 한가운데 간직한 채 해마다 한 켜, 한 켜 그 꿈을 키워간다.

나무는 절제력도 뛰어나다. 꽃이든, 열매든 모든 가지에 한꺼번에 다 피우고 다 매달지 않는다. 올해는 이쪽 가지, 내년엔 저쪽 가지, 때로는 해걸이를 하며 나름의 순서와 규칙을 정하여 실행한다. 실천할 수 없는 무리한 계획을 세우거나 작심 3일로 끝나는 일도 없다.

나무는 나이 들수록 품위가 더해진다. 연륜이 깊은 고목나무는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사방으로 뻗은 가지는 그늘과 쉼터를 만들고 굵은 줄기는 속을 비워 다른 생명을 품는다. 잘 비워야 잘 사는 것은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빽빽한 숲에서도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자존하고, 상대가 변하기를 바라기보다 자신을 바꾸어 관계를 맺고 세상에 적응한다. 마음을 깊숙이 다스려 생로병사에 순응하며 세월을 한탄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무는 버림으로써 얻는 경지를 안다. 가장 화려하게 물들 때 미련 없이 훌훌 털어 버리고 욕망과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쓰렁쓰렁한 겨울 숲에선 시인 레미 드 구르몽의 표현처럼 낙엽을 밟으면 영혼처럼 울 것 같다.

그러나 끝은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 나목으로 북풍한설을 견디며 뿌리로는 지난해의 경험을 토대로 희망찬 새해를 설계한다. 명년 봄엔 언제쯤 새순을 낼지, 가을엔 어떤 열매를 얼마나 맺을지 순서를 정하고 논리를 구성해 나무 방정식을 짠다.

나무는 기후변화를 예방하는 버팀목이다.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산소를 생산한다. 숲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탄소창고이며 산소공장이다. 인간의 욕망이 점점 커져가는 미래엔 나무의 역할이 더욱 절실해질 것이다. 나무에서는 늘 맑고 밝은 기운이 나온다. 숲에 가면 나무가 내쉰 산소를 내가 들이마시고 내가 뱉은 이산화탄소는 나무가 호흡한다. 나무의 숨결이 내 핏속으로 녹아들어 영혼을 씻어주고, 내 숨결은 다시 나무의 에너지로 사용되어 나무와 나는 하나가 된다. 지구촌 어디에 살든 핏줄이 당기듯 나무가 그리워지는 까닭이다. 마음 밭에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이유다. 나무야! 나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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