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호등]자치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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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화 사회체육부 기자

잊지 말아 달라는 호소 한 마디 없었다. 들고 일어나는 시민사회도 없었다.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한다며 잡혔던 기자회견은 장소 통지 한 시간 반 만에 취소 수순을 밟았다. 보도가 잇따르자 잠시 몸을 사리던 책임자들은 바람이 지나가기가 무섭게 없던 일인 듯 입을 다물었다. 지난해 12월 강원대병원 응급실에서 7시간 기다린 끝, 아무도 돌보지 않는 가운데 숨진 환자의 죽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시민, 주민, 무엇보다 응급실 내원 직전 강원대병원에서 퇴원한 환자. 돌봐줄 사람조차 없이 혼자 응급실에 방문했던, 아프다고 제대로 말할 수도 없었던 노인. 하지만 보건당국도, 강원특별자치도도, 강원대병원도 이 '사회적 방치' 앞에 책임감 있는 말들을 내놓지 않았다. 이런 광경을 지칭하는 단어가 하나 있다. '망각'이다. 어떤 죽음은 쉽게 잊힌다. 그의 죽음도 그랬다.

망각 뒤에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권력이 있다. '죽음'을 판단하고 여기 대응하는 과정은 '과학적'이지 않다. 다만 사회적이다. 무엇이 '죽음'인지를 결정하는 과정부터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지까지, 모두 사회적인 지식과 질서 안에서 결정된다. 판단과 결정이 사회적이라면 누구의 죽음을 기억하고, 누구의 죽음을 망각할지 판단하는 과정은 보다 '정치적'이다. 애도되지 않는 죽음은 정치적 선택의 결과다.

새해에도 이어지는 죽음, 반복되는 망각, 그리고 잊혀가는 주민의 삶을 본다. 그 안에서 주민들의 삶과 고통을 기각하는 정치적인 선택을 읽는다. 입이 닳도록 '자치'를 외치는 지방정부마저 주권자인 주민들의 목숨값을 쉽게 망각한다. 강원자치도의 유일한 대학병원급 공공의료기관인 강원대병원에서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의사들의 퇴사가 줄을 이어도, 코로나19 시기 모든 자원을 바쳐 대응에 앞장섰던 의료원이 적자로 비명을 질러대도 '특별한 자치'를 선언한 지방정부의 '특별한 대응'은 없었다. 법과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 보겠다는 의지조차 없어 보이는 강원자치도의 '정치적인 선택'을 보며 여기저기서 "의료원이 폐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새어 나왔다.

주민들의 삶과 고통을 외면한 자리에는 시장이 들어선다. 지난해 6월 강원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자치도는 '규제 철폐'에 사활을 걸고 나섰으나 철폐 대상에 주민들의 생명과 존엄한 삶을 방해하는 규제는 포함되지 않는 모양이다. '기업천국'을 만들겠다며 안 그래도 열악한 일자리에서 일하는 지역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더 깎을 생각을 하는 대신 모두를 위한 두터운 공공의료 지원을 바랐다면 너무 큰 욕심이었을까. 지방정부가 공공병원에 충분한 예산을 지원하고 책임지겠다는 담대한 구상이야말로 '특별자치도'의 권한 아래 가능한데 말이다.

강원특별자치도의 영문명은 '강원 스테이트(state)'다. 중앙집권적 사고를 버리고 국가 수준의 책임있는 자치를 해내겠다는 선언일 테다. 그러나 현재의 강원자치도는 '정부' 대신 '기업' 흉내에 심취한 듯하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의 생명과 존엄을 향해 있지 않은 자치에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자치의 의미를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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