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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대경]이과생 연구원의 ‘삶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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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대한민국의 아침은 여지없이 밝았다. 아침마다 버스를 타고 출근하면서 길거리의 많은 승용차들과 그 옆으로 웃으며 걸어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참 이해가 안 되었다. 우리에게도 옛이야기가 있다. 열심히 공부해서 어렵게 취업을 하여 직장생활을 성실히 하다 40대에 이르면 이른바 안정적인 삶이 보장되는 사회 중류층은 되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 달랐다. 암튼 그 당시에는 내가 풀 수 없는 대단한 수수께끼였다. 그 계산을 하는데 미적분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단순한 더하기 빼기만 해도 대답이 안 나오는데 어떻게 사람들이 웃으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지….

보통 연구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하면 나이가 30대 중반이고, 경험이 좀 쌓여 제대로 일을 하려고 하면 40대에 접어든다. 이 때 생각했다. 지금의 이 사회의 최고 가치인 ‘돈’을 목표로 삼으면 이것은 이미 실패한 인생이다. 그런데 아는가? 돈이 최고 가치가 되고 돈 있는 사람을 존경하고 돈 있는 사람들이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 세상은 불과 200년도 안되었다. 그 전에는 돈 이외의 여러 가지 가치들이 더 인정받고, 존경받는 삶의 목표였다. 약품냄새 나고 어두운 실험실에서 실험하고 공부하느라 35살이 되었는데, 이렇게 많은 것들을 희생하며 또 다시 공부하고 실험하며 25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돈이 목표가 되면 이번 삶은 견적이 안 나오는 삶이다. 실패한 인생이다. 더하기 빼기로 금방 계산 나오는 산수이다.

서구 중세시대에는 기사도 정신이 있었고, 우리나라에도 선비 정신 그리고 충효와 같은 그 시대의 최고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는 돈이 최고 가치가 되었다. 우리가 밤을 새며 공부하고 실험실에서 그 수많은 시간들을 보낸 보상이 결국 이 월급 받으려고 그 세월을 보냈나? 이런 대접하는 직장 생활을 하려고 한번 뿐인 인생의 황금기를 어두운 실험실에서, 빽빽한 글씨의 연구논문을 읽으며 보냈었나? 라는 의문을 가질 수 밖 에 없었다. 그 때 나는 깨달았다! ‘대한민국 흙수저 이과생 연구원’은 현재의 이 사회가 강요하는 가치와는 차원이 다른,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고귀한 삶의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이 가치를 기준으로 들여다보면 돈 많다고 거만한 부자도, 인기 많다고 잘난 체 하는 연예인도, 권력 있다고 어깨에 힘들어 있는 정치인도, 모두 우습게 보이는 그런 가치를 찾았다. 내가 연구하고 개발하는 기술을 성공시켜, 작게는 대한민국을 부유하게 만들고 크게는 인류의 삶을 보호하고 발전시키는 그런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일제 시대 때, 만주벌판에서 헐벗으며 독립운동 하던 독립운동가가 돈이 없다고, 인기가 없다고, 권력이 없다고 의기소침 했을까? 아니, 오히려 그런 이들을 우습게보며 자기가 꿈에 그리는 대한민국 독립의 가치를 위해 자기 자신을 내 던졌을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이과생 연구원들도 이런 가치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미쳐 돌아가는 현대 사회의 200년도 안된 벌거숭이 상태의 얄팍한 삶의 가치에 매몰되어 힘들어 하지 말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들보다 훨씬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아무리 그들이 우리와 같은 고귀한 삶을 살고 싶어도 절대로 살 수 없는 그런 삶을 우리는 살 수 있다고 감히 제언한다.

마지막으로 행복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다. 이런 저런 삶의 가치들을 이야기할 때,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고는 인정하지만, 행복이 삶의 목표라는 말에는 반대하기 힘든 분위기다. 그리고 그 행복의 이미지도 구속이 없는 자유로움과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로움. 한 장면으로 표현하자면 멋진 해변에서 칵테일 마시며 태양을 즐기는 그런 모습이 떠오른다. 행복이 삶의 목표가 된 것도 채 200년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가? 모두들 삼총사 소설을 읽어 봤을 것이다. 그 소설의 어느 누구가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던가? 여왕과 국가에 대한 충성, 동료와의 동료애 같은 것들을 지키면서 살고자 노력했다. 우리의 삶의 목표는 행복이 아니다.(적어도 위에서 언급된 행복은 아니다) 우리는 200년짜리 급조된 가치에 세뇌되어 있는 것이다. 한번만 주어진 이 삶, 젊은 시절을 쪽방 공부하고 컴컴한 실험실에서 수 많은 시간을 보내야 우리의 가치를 실현할 기회를 가지는데, 그것도 주어진 우리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직장생활, 요즘은 조기은퇴로 더 짧다), 길어봐야 20년의 시간, 이 짧은 시간 동안에 매미가 10년의 세월을 땅속에 있다가 나와서 짧게 울고 죽듯이, 우리는 대한민국을 기술로 더 강하게 하고, 기술로 인류의 삶을 향상시키는데 흔적을 남겨야 한다. 그래야 단칸방에서 얼어서 죽어가면서도 대한독립의 그날을 본 것으로 웃으며 죽을 수 있는 그런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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