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암 환자인데 일단 대기하라더라", "제왕절개 수술 하루 앞두고 연기 통보"…'의료대란' 현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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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병원 전공의 19일 근무 중단하기로 결정…수술 스케줄 조정 착수
빅5 서울 대형병원, 전공의 집단사직 기정사실화하고 수술 스케줄 등 조율

[사진=연합뉴스]

"암 환자인데 일단 대기하라더라", "제왕절개로 쌍둥이를 출산할 예정이었으나, 수술을 하루 앞두고 연기를 통보받았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의 사직이 잇따르면서 의료 현장 곳곳에서 '의료대란'이 현실화 되고 있다.

정부와 주요 병원, 보건소들이 대책 마련에 분주한 가운데, 일부 진료과는 이미 입원과 수술 스케줄을 연기하고 있어 환자들의 불만과 우려도 커지고 있다.

19일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지난 16일 빅5 병원인 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전공의 대표들과 논의한 결과 19일까지 해당 병원 전공의 전원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 오전 6시 이후에는 근무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중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등 일부 진료과목 전공의들은 이보다 하루 앞선 19일 사직서 제출과 함께 근무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세브란스 소아청소년과의 한 전공의는 공개적으로 사직의 뜻을 표하며 "19일 소아청소년과 1∼3년차의 사직서를 일괄적으로 전달하고, 오전 7시부터 파업에 들어간다"고 알렸다.

세브란스병원은 이미 19일 전공의의 총파업을 가정한 채 내부에서 수술 스케줄 조정에 착수한 상태다.

세브란스병원은 지난 16일 전공의 공백에 대비해 진료과별로 수술 스케줄 조정을 논의해달라고 공지했고, 마취통증의학과 전공의의 부재로 수술을 절반 이상 감축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마취과 전공의는 수술 중 마취과 교수의 마취 업무를 보조하면서 환자 상태를 살피는 등의 역할을 한다.

세브란스병원뿐만 아니라 다른 병원들도 이미 다수의 전공의가 사직 의사를 표하고 있는 만큼 스케줄 조정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상급종합병원 의사 인력의 30∼40%를 차지하는 전공의들은 교수의 수술과 진료를 보조하고 입원 환자 상태를 점검하는 등 다양한 업무를 맡고 있다.

이미 서울 시내 주요 병원에서 수술 스케줄이 조정됐다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도 전공의 집단사직이 현실화했을 때 혼란이 가중하지 않도록 수술과 입원을 어떻게 조정할 수 있을지, 대체 인력을 어떻게 배치할 지 등을 다각도로 논의 중이다.

대부분 병원은 가용할 수 있는 인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응급·위중한 수술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역시 전공의들의 집단사직과 전면 파업으로 인해 응급·중증도에 따라 수술과 입원 스케줄이 조정될 수 있다고 환자들에게 안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이 현실화하면서 "그대로 수술받을 수 있는 거냐"는 환자들의 문의도 쏟아지고 있다

서울시내 빅5 병원에서 오는 21일 수술 예정이었다는 한 암 환자는 환우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 "입원 안내하는 문자가 오지 않아 전화해보니 월요일(19일)은 돼야 확실히 알 수 있다며 일단 대기하라고 하더라"며 "입원해도 수술이 취소될 수 있다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불안해했다.

서울대병원에서 제왕절개로 쌍둥이를 출산할 예정이었으나, 수술을 하루 앞두고 연기를 통보받았다는 환자의 안타까운 사연도 전해졌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부모님의 목디스크 수술이 무기한 연기돼 당황스럽다는 보호자의 성토, 당장 분만을 앞두고 출산 시 무통 주사가 불가능하다는 통지를 받았다는 임신부 등의 사례도 온라인에서 확산하고 있다.

복지부 산하 의료기관인 국립암센터마저 전공의 집단사직이 가시화되면서 수술 일정이 조정되는 모양새다.

난소암으로 국립암센터에 수술 일정을 잡았는데 무기한 연기됐다거나, 수술을 앞두고 입원했다가 급히 한 달여 밀리는 바람에 하루 만에 퇴원했다는 보호자들의 증언이 나오고 있다.

국립암센터 관계자는 "파업 가능성이 커지면서 일부 진료과 교수들이 수술을 안 잡고 있었던 것 같은데,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수술이 미뤄진 건 없다"며 "파업에 따른 수술 중단 등에 대해서는 내일(19일) 오전에 관련 회의를 열고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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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들이 빠져나가면서 예정됐던 입원과 수술이 늦어질 뿐만 아니라, 이미 입원 중인 환자를 돌보는 데에도 어려움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채혈이나 요도관 삽입, 환자로부터 수술 전 동의서 서명 확인 등 전공의들이 맡았던 업무를 간호사에 맡기는 경우도 지속해서 보고된다.

일부 병원은 '진료보조(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 인력을 충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간호계에서는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으로 인한 의료공백을 메꾸는 데 참여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다만 PA 간호사 등이 업무 외 의사의 역할을 대신했을 때 피해를 보지 않도록 법적 보호 장치를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의료계에서는 2020년 의대 증원에 반대하며 전공의들이 병원 밖을 나섰던 때처럼 의료 현장에서 혼란이 극심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당시에도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에 반발해 집단휴진 등에 돌입하자 각 병원에서 임상강사와 교수 등을 투입하며 의료대란이 벌어지지 않도록 애썼다.

다만 당시에도 전공의의 집단휴진이 '무기한' 이어지면서 현장의 인력 부족이 심화한 데 따라 급하지 않은 수술을 연기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일부 병원 응급실에서는 전공의 없이 교수들이 모여 환자를 돌보기도 했다.

이 때문에 각 병원에서는 전공의의 '공백'이 장기화하는 상황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더욱이 임상강사, 펠로 등으로 불리는 전임의들도 가세할 경우 감당하지 못할 상황으로 악화할 수 있다. 전임의는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전문의를 취득한 후 병원에 남아 세부 전공을 배우는 의사들이다.

빅5 병원 관계자는 "오는 20일이 돼야 정확한 사직 규모를 파악할 수 있겠지만, 만일에 대비해 환자 안전과 진료 불편 최소화를 위해 여러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며 "병원 차원의 대처도 있겠지만 진료과별로 융통성 있게 조절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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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보건복지부는 16일 오후 6시 기준 전공의 수 상위 수련병원 100곳 중 23곳에서 715명이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집계했다. 이들 중 실제로 근무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 전공의 103명에게는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아직 실제로 사직서가 수리된 곳은 없지만, 대전협과 '빅5'의 방침에 따라 전국 곳곳에서 사직 움직임이 이어질 모양새다.

전국 수련병원에서 근무 중인 전공의는 약 1만3천명으로, 응급 당직의 핵심인 전공의들이 한꺼번에 진료 현장을 떠나면 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전국적으로 2만명가량으로 추산되는 의대생들도 20일 '선배'들인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는 시기에 맞춰 학교를 비운다.

앞서 전국 40개 의대 가운데 35개 대학 대표자는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15일 저녁 긴급회의를 열고 전국 의대생들이 이달 20일 함께 휴학계를 내는 것으로 결정했다.

일선 병원에서 전공의들의 단체 움직임이 가시화하면서 정부도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전날 브리핑에서 "복지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는 비상진료대책상황실을 운영 중이고, 관계 부처와 지자체, 공공병원 등에서 대책을 수립하고 있다"며 "상급종합병원은 입원·중증 진료를 중심으로 진료 기능을 유지하고, 전국 400곳의 응급의료기관은 24시간 비상진료체계를 철저히 운영하겠다"고 설명했다.

조 장관은 또 "전국의 지방의료원 35곳, 적십자병원 6곳과 보건소 등 공공병원의 진료 시간을 연장하고 비대면 진료도 대폭 확대하겠다"며 "파업 시에도 병원 운영이 가능하도록 재정 지원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또 각 수련병원에 전공의들의 근무상황을 매일 보고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사직서 제출 후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에게 무더기로 업무개시(복귀)명령을 내린 데 이어 이들이 복귀한 후에도 실제로 근무하는지를 확인하려는 의도다.

복지부에 따르면 한번 내린 업무복귀명령의 효력은 대상자가 복귀한 후에도 유지된다. 따라서 복귀 후 다시 근무지를 떠난 경우 추가적인 업무복귀명령 없이도 기존 명령을 어긴 것으로 판단한다.

정부는 업무개시명령 불이행자에 대해 '기계적으로' 법을 적용해 엄정 처벌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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