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중언

[언중언] ‘인술(仁術)’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가 1952년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기차를 탔다. 기자들이 인터뷰를 하기 위해 특등칸과 1등칸, 2등칸을 뒤졌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뒤늦게 그가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는 3등칸에서 가난한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기자들이 “왜 이런 3등칸을 타고 가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저는 편안한 곳이 아닌 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다닙니다”라고 했다. ▼1995년 12월25일 성탄절 새벽 하늘의 별이 된 장기려 박사는 낮은 곳에서 청빈한 삶을 살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인술을 베풀었던 외과의사다. 6·25전쟁 탓에 부산으로 피난 온 장 박사는 복음병원을 세웠지만 그의 월급은 언제나 적자였다. 급여로 환자들의 수술비를 대신 내줬기 때문이다. 평생 의사로 일하면서 남긴 재산도 1,000만원이 든 예금통장이 전부였다. 그 돈마저 자신을 돌봐 준 간병인에게 모두 주었다. 그는 “의사를 한 번도 못 보고 죽어 가는 사람들을 위해 뒷산 바윗돌처럼 항상 서 있는 의사가 되겠다”고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것이며, 좋은 의사가 되려면 먼저 좋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담긴 내용이다. 의술보다 ‘인술’에 방점이 찍혔다.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다룬다. 그러기에 고귀한 사명감과 높은 인도주의 정신을 갖고 환자를 대할 때 의사에게 우리는 경외심을 갖는다. 환자와 가족은 물론 세상 사람도 인품을 갖춘 진정한 명의에게는 존경을 표하며 고개를 숙인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의사라고 하면 두툼한 가방을 들고 골목을 오가던 왕진 의사를 떠올렸다. 모든 게 열악할 때라 청진기, 체온계, 응급 약과 주사기가 전부였지만 의사가 환자에게 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요즘 의사로는 TV드라마에서 인술을 펼치던 ‘낭만닥터 김사부’,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이익준, 안정원 등을 우리는 연상한다. 최근 전공의 집단 사퇴에 따른 의료대란으로 많은 환자와 국민이 가슴을 졸이고 있다. 새삼 인술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겨 보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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