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서울아산병원 응급실 "뇌출혈 환자도 못받아"…의대교수 근무 축소 첫날 환자들 '노심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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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교수들 "중증·응급환자 집중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
동네 의원도 '주 40시간' 진료 선언…참여 정도는 미미할듯
대형병원 이미 수술 절반으로 줄여…응급실 상황은 더 악화

◇의·정(醫政)갈등 언제까지…. 사진=연합뉴스

속보=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로 촉발된 의·정(醫政)갈등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가운데, 의대 교수들이 1일부터 근무 시간을 축소하자 환자들의 불안감이 극에 달했다.

동네 병의원 등을 운영하는 개원의들도 이날부터 '주 40시간' 진료를 선언한 만큼 환자들이 불편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다만 개원의들의 특성상 참여 수준은 미미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의료계에 따르면 전국 의과대학·대학병원 교수들은 이날부터 중증·응급환자 진료를 유지하고자 외래와 수술을 대폭 조정하기로 했다.

앞서 전국의대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와 전국 의과대학 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이날부터 24시간 연속근무 후 익일 주간 업무를 '오프'하고, 수련병원별로 외래와 수술을 최소화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2월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에 반발해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한 후 병원을 떠난 지 50일이 가까워지면서 '신체적·정신적 한계'에 직면했다는 이유다.

주요 병원들은 전공의 이탈 후 수술을 절반 가까이 줄였지만,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교수들은 이마저도 유지하기 힘들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동안 교수들은 수술과 외래 진료, 입원환자 관리와 주야간 당직 등을 도맡아왔다.

진료 축소는 병원에서 일괄적으로 정하지 않고, 교수들이 과목별 인력 상황에 맞춰 결정하기로 했다.

◇의·정(醫政)갈등 언제까지…. 사진=연합뉴스

서울시내 '빅5' 병원 관계자는 "교수들이 외래진료를 축소한다고 해도 하루 이틀 만에 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당장은 변동이 없다"며 "당직 시스템도 손봐야 해서 단기간에 조정이 되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른 대형병원 관계자 역시 "현재 진료 상황은 지난주와 비슷한 수준"이라며 "각 진료과별로 조정하겠지만, 아직 특별한 변동은 없다"고 전했다.

수술과 외래진료 축소와는 별개로 응급실 상황은 나날이 악화하고 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등 교수들이 번갈아 당직을 서면서 지켜왔지만, 절대적인 인력 부족 탓에 기능 축소가 불가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앙응급의료센터에 따르면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은 이날 거미막하출혈(지주막하출혈)과 같은 뇌출혈 환자도 받지 못한다고 공지했다.

서울성모병원 응급실도 지난주부터 '비응급 경증 환자'는 수용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1차 의료기관인 동네 병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대한의사협회(의협)도 이날부터 진료 축소에 동참한다고 선언했다.

의협 비상대책위원회는 전날 회의를 열어 개원의도 주 40시간 진료 시간을 지키기로 결론 내렸다. 주말과 야간 진료를 축소하면서 주 40시간을 맞출 방침이다. 이에 따라 동네 의원에서의 주말이나 야간 진료 등이 일부 어려워질 전망이다.

다만 의료계 안팎에서는 대부분 자영업자인 개원의들이 적극적으로 '진료 축소'에 참여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을 보인다.

과거 의료계의 집단행동은 대부분 전공의와 같은 젊은 의사들이 주도했고, 개원의들은 짧게 참여하는 데 그쳤던 만큼 과거와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갈 것으로 보고있다.

◇끝이 안 보이는 의·정(醫政)갈등. 사진=연합뉴스

동네의원은 애초 평일에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료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므로 '주 40시간' 진료했을 때의 체감이 크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정부가 의대 증원 '2천명'에 쐐기를 박은 상황에서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이 예상치 못하게 길어지고 있고, 교수들마저 사직을 각오하는 등 의료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탓에 과거와는 다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대형병원이 수술과 진료를 대거 축소한 탓에 동네의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만큼, 개원가에서 진료를 조금이라도 줄이면 예년보다 파급력이 클 수 있다.

서울에서 산부인과를 운영하는 개원의 A씨는 "정부가 의료 정책에 반대하는 의사들을 모두 돈 때문인 양 몰아가는 것 아니냐"며 "의사들 사이의 회의감이 심각한 상황이어서 진료를 축소하는 분위기가 확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맞벌이 부부가 많이 이용하는 주말 진료가 축소되면 실질적인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환자들은 당장의 불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걱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서울에서 두살짜리 아이를 키우는 30대 여성 A씨는 "평일에는 직장에 출근해야 하다 보니 아이도, 나도 주말에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은데 당장 진료가 줄어들까 봐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 1일 오전 서울 한 대형병원에서 내원객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 개혁 관련 대국민 담화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편, 전공의 148명이 자리를 비운 충북 유일 상급종합병원 충북대병원에서는 이날 20여개 병동 중 총 5개 병동의 불이 꺼졌다.

하루 평균 수술 건수는 평소보다 약 50% 떨어졌다.

환자들은 혹시라도 이미 예약한 진료와 수술 일정에 차질이 생길까 노심초사 하고 있다.

강원대병원에서는 정신과와 정형외과 병동 일부 운영이 축소됐다.

원주 세브란스 기독병원은 외래진료는 유지하지만, 이날부터 일반 병동 1개를 축소 운영하기로 했다.

원주 세브란스 기독병원 관계자는 "상황에 따라 축소·통합되는 병동이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강원대병원 교수들은 오는 4일까지 내과 의국에 마련된 사직서 함에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했으며, 원주 세브란스 기독병원에서도 일부 교수진이 사직 의사를 밝히는 등 교수들의 사직 행렬도 잇따르는 모양새다.

충북대 의대 교수 200여명 중 80명 이상이 사직서를 제출했으며, 피로도 누적으로 인해 이달부터 주 52시간 근무를 하기로 했다.

당장 오는 5일부터 일부 과는 외래 진료를 막기로 알려졌다.

전남대 의과대학은 교수 283명 중 200명 이상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날 오후 이들은 주 52시간 근무를 준수, 근무 시간 단축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다.

◇의·정(醫政)갈등 언제까지…. 사진=연합뉴스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은 소속 교수 일부가 이날 자로 외래 진료를 줄이겠다며 병원 측에 일정 조정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몇몇 진료과의 경우 예정돼 있던 외래 진료 일정이 뒤로 미뤄진 상황이다.

병원 측은 한동안 주요 진료과의 신규 외래 접수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정확한 수치를 집계한 것은 아니지만, 교수들이 오늘부터 외래 진료를 조금씩 줄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신규 환자를 받는 것은 당분간 쉽지 않을 듯하며 기존에 내원하던 환자들 위주로 진료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 사태 이후 이 병원의 입원 병상 가동률과 수술 건수 또한 기존의 30∼50%가량 줄어든 상태다.

분당서울대병원은 비응급 수술 일정을 일부 연기하며 응급, 중증, 암 환자에 대한 수술을 중심으로 근무 중인 의료진을 투입 중이다.

수원시 아주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이하 비대위)도 내부 공지 등을 통해 주 52시간 근무를 권고했다.

비대위는 지난 25일부터 교수 400여 명을 대상으로 사직서를 받고 있으나 제출 인원은 알려지지 않았다.

◇의·정(醫政)갈등 언제까지…. 사진=연합뉴스

전국의대 교수비상대책위원회의 준법 투쟁 의결에도 많은 의과대학 교수는 실제 환자 곁을 떠나지 않고 현장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부산대병원 역시 주 52시간 준법 투쟁에 나선다고 예고는 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외래진료나 수술을 여러달 전부터 예약했던 환자들이 계속 진료받을 경우 이를 조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으로 예상됐다.

전공의 집단 이탈이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일부 진료과에서는 신규 환자는 받지 않고 있다.

진료과 30여개 가운데 진료과 6∼7개는 신규 환자를 아예 받고 있지 않으며, 또 다른 6∼7개 과는 부분적으로 신규 환자를 받지 않고 있다.

부산대병원 관계자는 "집행부에서도 의사들에게 본인 건강을 고려해 스케줄을 조정하라고 당부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부산대병원의 한 교수는 "수술 건수와 환자 수가 크게 줄었다지만 남아 있는 환자가 모두 중환자이기 때문에 격무는 여전하다"며 "일부 교수가 사직서를 내기도 했지만, 현장을 이탈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동아대병원 역시 주 52시간 근무가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모습이다.

동아대 의대 교수협의회는 지난달 29일 최근 전공의 집단 이탈로 교수들의 업무 부담이 커지는 것과 관련해 대책을 촉구했다.

이들은 의견문에서 "의대 교수는 슈퍼맨이 아니다"라며 "모든 직장에서 과로를 금지하고 있으며 이를 어기면 사업주가 처벌받지만, 의료계에서만 예외로 적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의·정(醫政)갈등 언제까지…. 사진=연합뉴스

경남 경상국립대도 진료과별로 52시간 돌입을 준비하고 있으나 아직 본격적 시행은 미뤄지고 있다.

경상국립대병원은 현재 52시간 돌입에 대비해 상시 대기가 필요한 응급 파트는 그대로 유지하고 대신 다른 과 근무 시간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과별 조율 등 구체적 시행 방안을 마련하고 있을 뿐 아직 52시간제 시행은 하지 않고 있다.

경상국립대 의대 관계자는 "현재 내부 논의가 이뤄지고 있으나 당장 52시간제에 돌입하지는 않을 것 같다"며 "다른 과 외래환자는 줄이는 식으로 근무 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며 응급 파트는 그대로 유지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인천 주요 대학병원도 아직 적극적인 동참 움직임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인하대 의대 교수회에 따르면 의대 교수 203명 중 66명(32.5%)이 지난달 29일까지 교수회에 사직서 제출 의사를 밝혔으나 실제로 사직서를 제출한 인원은 아직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 이날부터 근무 시간이나 진료·수술을 축소하려는 움직임도 아직 관찰되지 않았다.

다만 전공의 이탈에 따라 의대 교수들의 피로도가 누적되고 있는 단계라 병원 측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인하대병원 관계자는 "외래 진료 예약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예약을 취소하고 환자를 돌려보낼 수는 없다"며 "다만 교수들이 당직 후 수술을 하는 등 계속된 업무 부담으로 체력적으로 힘든 상태라 대책을 마련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끝이 안 보이는 의·정(醫政)갈등. 사진=연합뉴스

가천대 길병원에서도 이날 수술이나 진료 일정을 조정하려는 움직임은 관찰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인천에서는 지난달 28일 기준 11개 수련병원 소속 전공의 540명 가운데 471명이 사직서를 낸 상태다. 그러나 이들 중 실제로 근무하지 않는 전공의는 365명이다.

병원별 사직 전공의 수는 길병원이 176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인하대병원 152명, 인천성모병원 72명, 국제성모병원 42명 등이다.

전임의 역시 계약 대상인 68명 중 26명만 계약을 완료했다.

전공의 집단 이탈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사태 초기 80%대였던 인천 상급종합병원 3곳의 병상 가동률은 57%로 떨어졌다.

종합병원 15곳의 병상 가동률은 78.1%, 공공의료기관 5곳은 61.4% 수준을 보인다.

울산대학교병원도 아직 별다른 진료 시간 조정 계획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울산대병원 관계자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아직 진료 시간 축소에 대한 논의는 내부적으로 없다"고 밝혔다.

◇끝이 안 보이는 의·정(醫政)갈등. 사진=연합뉴스

전남대병원장은 모든 의과대학 교수에게 '진료 유지 호소문'을 전송한 바 있으나 진료 축소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제주대 의과대학도 이날부터 교수 153명이 24시간 연속 근무를 선 다음 날 주간 근무를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외래와 수술 일정을 조정했다.

제주대병원 교수들 역시 그간 주 100시간 가까이 근무했으나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의 방침에 따라 법정 근로시간인 주 52시간에 맞춰 진료 일정을 수정했다. 병상 가동률은 30%대다.

전북대와 원광대 의대 교수들도 이날부터 "물리적·정신적 한계로 인해 환자의 안전한 진료가 어렵다"며 주 52시간 준법 근로 투쟁과 일부 외래 진료 축소를 본격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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