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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칼럼] 여기 쉽게 돈 버는 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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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훈 춘천지방법원 판사 

윤상훈 춘천지방법원 판사

요즘 같이 힘든 시기에 월 300만 원을 벌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고객을 만나서 고객이 주는 현금을 받아 그대로 다른 직원에게 전달하거나, ATM기기에서 회사 직원들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여 회사 계좌로 100만 원씩 나누어 무통장 입금하면 되는 간단한 일입니다.

사장이나 팀장을 만나진 못했지만, “저희는 세금관리회사이고 미납부 세금을 받아 회사 재무팀 계좌로 넣어주는 일입니다. 카카오톡으로 이력서, 신분증 사진, 가족 연락처, 주소를 보내주세요”, “저희는 은행권 업무대행법인이고 부동산실사업무를 할 직원을 모집합니다. 수습기간 후 4대 보험 적용됩니다”는 소개를 들었습니다. 회사를 찾아보니 홈페이지나 지도에서 확인이 됩니다. 그렇다면 일을 시작하시겠나요?

일은 간단합니다. 팀장은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텔레그램’이라는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텔레그램’으로 금융감독원, ○○은행이 적힌 이미지파일을 보내줍니다. 이를 출력하여 고객에게 전달한 후 현금을 받아 회사 계좌로 입금하면 됩니다. 고객을 만나기 위해 택시를 타고 이곳저곳을 이동하고 현금을 들고 다니는 일이 찝찝해 물어보면, 문제가 있어도 회사가 책임진다고 합니다. 고객에게서 받은 현금 중 일부를 택시비, 식비, 수당으로 가져갈 수도 있습니다. 간단한 일인데 돈도 잘 챙겨주고 책임감 있어 보이는 회사에 믿음이 갑니다. 그래서 그 말을 믿고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자, 이제 여러분은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해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만난 고객은 사실 보이스피싱 범죄의 피해자였습니다. 피해자가 속은 방식은 이렇습니다. 은행권에 대출이 있던 피해자는 높은 금리에 힘들던 때 ‘정부지원 소상공인 저금리 대출’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카드 직원은 저금리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문자로 보낸 파일을 설치해야 한다고 합니다. 저금리 대출은 일사천리로 진행됩니다. 그런데 갑자기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연락이 와 “대출을 신청할 수 없는 상품에 대출을 신청했으니 기존 대출금을 금융감독원 직원에게 현금으로 상환해야 다른 대출이 진행된다”거나, ○○카드 직원이 “대환대출은 약관 위반이니 기존 대출금을 전액 상환하여야 저금리 대출이 진행된다”고 합니다. 피해자는 저금리로 대출을 받기 위해 가지고 있던 돈을 현금으로 인출하여 금융감독원 직원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만나 돈을 건네준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보이스피싱 범죄인 줄 몰랐다며 범죄구성요건의 주관적 요소인 고의가 없다고 주장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고의는 미필적 고의를 포함하고, 미필적 고의란 범죄사실의 발생 가능성에 대한 인식과 그 위험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를 말합니다. 법원은, 여러분의 고의를 일반인이라면 범죄사실이 발생할 가능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고려하여 판단하게 됩니다. 보이스피싱 범죄는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어 범행의 수법과 그 해악이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온라인 거래가 일상화된 현실에서 서로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거액의 현금을 수수하는 행위는 누구든지 보이스피싱 범죄와의 관련성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으로부터 거액의 현금을 받아 이를 그대로 누군가에게 전달한 일은 어떻게 평가될까요? 간단한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했던 일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이 칼럼의 제목은 바꾸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 쉽게 감옥 가는 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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