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소설 속 강원도](69)주영선의 ‘얼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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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봉평 찻집 배경 집필 고립감 경험하며 관계 단절

◇얼음집이 실린 소설집 ‘모슬린 장갑’

태백 출신 주영선의 단편 ‘얼음집’은 짧지만 상당히 인상적으로 읽은 작품 가운데 하나다. 2008 문학수첩 작가상 수상작인 장편 ‘아웃’과 이 이야기에 이어지는 ‘얼음왕국’이 너무도 명징하게 사회 부조리와 불공정을 향하고 있었다면, 이 작품이 좀 더 개인적이고 내밀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같은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갑게 다가왔다.

소설은 시골 진료소에서 일하고 있는 ‘민’이 주인공이다. 소설 속에서의 표현을 종합하면 아주 규모가 작은 ‘보건진료소’가 그의 직장이다. 현실 세계에서 ‘보건소’보다 규모가 작은 곳이 ‘보건지소’, 그곳 보다 더 작은 곳이 ‘보건진료소’로 구분되니, 말 그대로 깡촌에 살고 있는 것이다. 다른 주영선의 작품처럼 이번에도 가상의 공간이냐고? 아니다. 그들의 공간을 추측할 수 있는 지명이 살짝 나온다. 민이 등장인물 ‘서’와 만나는 장소가 ‘봉평의 한 찻집’이었으니, 그 언저리 어디쯤 군(郡)지역이 그들이 머무는 곳이다. 서 역시 민과 같은 간호사, 글을 쓴다는 공통점을 갖고 친해진다. 또 다른 등장인물 ‘강’은 민과 대학동기이자 전에 민이 있던 진료소로 온 후임자로 나오지만 왠지 피하고 싶은 껄끄러운 관계다. 이렇게 세 명의 이야기가 소설을 이끈다. 민은 상당히 방어적인 인물로 나온다.

이 소설을 택하게 된 것도 지난 주말 양양군 강현면의 한 카페에서 목격한 일에서 민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한 손님이 카페 마당에 있던 캠핑 트레일러를 보고 카페 주인에게 다가가 “저기서 잠도 자냐”는 물음을 던지고 사라진 후, 불쾌한 듯 “왜 그게 궁금할까”라는 혼잣말을 하는 모습이 서재에서 소설집을 뒤적이게 만든 이유라면 이유다. 아무튼 민은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이 서로를 할퀴는 일에 이미 넌덜머리가 나 있는 상태다. 강도 그런 부류 중 하나였으니 출장길을 홀로 떠난 것은 민의 성격상 당연한 일이었다. 어린 시절을 거치며 이미 생채기로 가득한 그에게 또 다른 상처가 비집고 들어올 일을 원천봉쇄하기 위한 자기 방어적 행동이라고 할까.

어린 시절 졸업식에 가지 않은 민을 대신해 단짝 친구가 그의 졸업장을 들고 문 밖에서 기다리다 돌아가는 모습에서 “인생의 마디 하나가 두 갈래로 나뉘어 매듭지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한 주영선의 표현은 그래서 상당히 인상적이고 아리게 다가온다.

민은 시골 진료소에서의 생활과 그로 인한 고립감, 외로움을 경험하면서, 감정을 표현하거나 더욱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으로서 타인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행동을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거의 유일하게 감정 교류를 했던 서가 우울증으로 불을 지르고 정신병원으로 간 것은 그에게 상당한 충격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강이 그녀에게 내뱉은 “냉혈! 얼음인간!”이라고 한 것은 가까스로 감정의 꼭지를 틀어쥐고 있는 민에게 오히려 ‘카타르시스’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나는 얼음집에 이사 왔다”는 강이 써내려간 글. 어쩌면 강은 민이 만들어 낸 ‘얼음집’에 잘못 발을 들인 죄 없는 입주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소설 속 G일보는 혹시 강원일보? 자세한 줄거리는 자제한다. 대신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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