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소설 속 강원도]인간의 처절한 삶·끝없는 욕망 거침없이 드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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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신장현 '태백 타임캡슐'

문학에 있어서 태백은 ‘사북항쟁’으로 수렴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코너를 통해 소개한 이옥수의 ‘내사랑 사북’이 그렇고, 앞으로 소개할 예정인 현길언의 ‘회색도시’가 그렇다. 마치 분단문학의 카테고리 안에 철원은 당연히(?) 포함되거나, 영월을 배경으로 한 소설에 단종의 얘기가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 것과 같이 ‘짝’의 개념으로 굳어진 것 아닐까 싶다. 문학에서 지역을 그리는 방식이나 방향이 하나의 이미지로 고착되는 것에 대한 염려가 있지만도 말이다. 최근 출간된 신장현의 장편소설 ‘태백 타임캡슐’은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며 흐르는 두개의 이야기 한쪽에 사북항쟁을 위치시켜 놓고 현재와 끊임없이 교감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소설의 얼개를 구성하고 또 이끌어 간다.

소설은 과거 태백의 탄광과 현재 건설현장을 번갈아 보여주며 인간이 지니고 있는 천박함, 처절한 삶의 현장, 끝없는 욕망을 거침 없이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막장 인생이라고 부르는 탄광에서의 노동, 삶이 현재에 이르러 타워크레인 고공 조정실로 이식된 부분은 이 소설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부분이다.

소설은 이명그룹의 쌍둥이 빌딩 중 하나인 서관이 올라가고 있는 건설 현장의 긴박함 속에서 시작된다. 한 사람이 타워크레인 지브의 로프에 매달려 몸부림을 치고 있는데, 바로 이명그룹의 후계자인 장일환 전무다. 장전무을 갈고리에 달아 올린 사람들은 현장의 인부들이다. 이들은 이명그룹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태백의 광산의 옛 노동자들. 이제는 카지노 단지의 콘도를 건설 중인 현지에서 하나 둘 상경해 그동안 앓아온 진폐증과 감춰진 사고의 사후 보상을 요구하면서 실력행사에 나선 것이다. 타워크레인의 운전대를 잡고 장전무를 이리 저리 혼쭐 내고 있는 사람은 곽영석으로 탄광에서 이 곳까지 흘러들었다. 그의 아버지는 오래 전 이명광업소가 안전 조치를 하지 않아 발생한 사고에서 목숨을 잃었던 인물. 어린 시절을 줄곧 탄광촌에서 보낸 영석은 여동생인 신례를 폐광으로 데려가 죽게 한 아픈 상처를 갖고 그 악몽에서 헤어나지를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군복무 시절에는 상관을 사망케 한 사고에 연루돼 징역을 살았고, 그가 있던 춘천 군부대에 면회를 왔던 어머니도 뺑소니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했다. 반면 영석의 형 곽진석은 일찌감치 태백을 떠나 대도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인텔리다. 아이러니하게도 집안의 불행이 시작된 이명그룹의 문화재단 후원을 받고 승승장구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진석은 어머니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생각하는 동생 영석에 대한 미움과 저주가 극에 달해있다. 이들 형제의 앞길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소설에는 강원도 지명이나 탄광에서 쓰이는 단어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특히 소설의 끝부분, 1980년 4월21일, 22일 사북 동원탄좌에서의 상황을 재연한 장면에서는 사실감이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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