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 ‘오대산 실록·의궤 선양회’ 출범에 거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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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월정사 경내 회의실에서 발기인 총회
다양한 각 분야 전문가들, 실질적 역할 분담을
관광상품 개발 등 지역 발전과 연계돼야

조선왕조실록과 의궤 오대산사고본(이하 왕조실록과 의궤)이 원소장처인 오대산으로 돌아온 것은 우리에게 자긍심과 자부심을 안겨줬다. 귀향(歸鄕)하기까지는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왕조실록과 의궤는 일제강점기인 1913년과 1922년 일제의 계략 속에 고향 땅을 떠났다. 실록은 1913년 조선총독 데라우치와 도쿄대 교수 시로토리(白鳥庫佶)의 결탁으로 주문진항을 통해 일본 도쿄대로 보내지고, 의궤는 1922년 조선총독부가 일본 왕실 사무를 담당하는 궁내청에 ‘기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약탈로 타향살이를 시작했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실록의 상당수는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 가운데 일부인 27책은 1932년 경성제국대로 옮겨져 돌아왔지만 나머지 실록과 의궤는 1965년 한일 문화재·문화협정을 거치면서 점차 잊혀진다. 1980년대 학계와 불교계에서 왕조실록·의궤 잔본의 실재(實在)를 일본에서 확인하면서 월정사 등 민간을 중심으로 한 환수운동이 벌어져 2006년과 2011년에 왕조실록·의궤는 환국에 성공한다. 하지만 보관 장소는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최종 결정된다. 이 같은 조치에 실록과 의궤를 원소장처인 오대산으로 모셔와야 한다는 의견이 들불처럼 일어났고, 2021년 월정사와 강원일보 등이 주축이 돼 범도민환수위를 출범시켜 다시 한번 문화재제자리찾기 운동을 펼치기에 이른다. 급기야 이듬해 국회가 결의안 의결로 힘을 보탰고, 월정사가 왕조실록·의궤박물관을 기부채납하는 방안을 제안한데 이어 정부가 전시관 예산을 별도 편성하면서 급물살을 타게 됐다. 이제 어렵게 왕조실록과 의궤가 제자리로 돌아온 만큼 지역 발전과 연계돼야 더 큰 빛을 발할 수 있다. 마침 왕조실록·의궤 범도민 환수위원회가 28일 월정사 경내 회의실에서 왕조실록·의궤 선양회의 사단법인 설립을 위한 발기인 총회를 개최하는 것은 대단히 시의 적절하다. 선양회가 환수위의 성과와 노하우를 그대로 계승하는 한편 선양사업의 확장성을 위해 대규모 거버넌스를 구축, 여러 분야에서 특화된 프로그램을 기획·실행해 나간다고 하니 향후 활동에 기대가 크다.

다양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선양회의 출범이 늘 그랬던 것처럼 이름만 내놓는 싱거운 조직이 돼선 결코 안 된다. 참여하는 전문가들의 실질적인 역할 분담이 분명하고 전문가로서의 소명감으로 이를 추진함으로써 주민들에게 역사 의식을 심어줘야 한다. 더욱이 왕조실록과 의궤의 귀향을 기념하는 연례 축제를 진행한다고 하니 지역의 관광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오대산 특유의 장점을 잘 살려내야 한다. 왕조실록과 의궤 관련 관광상품도 자치단체와 협의해 개발해 나가야 함은 물론이다. 지역의 관광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왕조실록과 의궤의 귀향만큼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 실천력이 담보된 치밀한 구상이 더없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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