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尹, "의대정원 재조정 여지" 언급에 김영환, "충북 300명 물러설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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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2천명 협상 불가'→'절대적 숫자 아니다' 전향적 자세
공은 의사 쪽 넘어와…'2천명 백지화' 벗어나 협상 여부 주목
'강경론' 고수하는 의협…전공의·의대생들 "증원 백지화해야"

◇의과대학·대학병원 교수들이 외래 진료와 수술을 줄이기로 한 1일 오전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한 의료 관계자가 수술실 인근을 지나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의대 증원 2천명이라는 숫자에 매몰되지 않겠다며 재조정 가능성을 언급한 가운데, 의료계도 '백지화' 주장에서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정부가 '2천명에서 줄이려면 통일안을 내달라'고 의료계에 요청한 만큼, 공은 의료계로 넘어온 셈이다.

하지만 법정 의료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집단행동의 주역인 전공의들은 강경론을 굽히지 않고 있어 의료계 차원의 통일된 제안이 나올지 미지수다.

정부와의 협상에 다소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의대 교수들이 유일한 희망이지만, 이들마저 '중재'에 실패하면 의대 증원은 다음 달 최종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2일 의료계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전날 대국민 담화는 의대 증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는 점에서 "기존과 달라진 게 뭐냐"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2천명 증원 협상 불가'에서 한발짝 물러섰다는 점에서 전향적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의료계에 "증원 규모를 2천명에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려면 집단행동이 아니라 확실한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통일된 안을 정부에 제시해야 마땅하다"고 요구했다.

나아가 "더 타당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가져온다면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 "정부의 정책은 늘 열려 있다", "더 좋은 의견과 합리적인 근거가 제시된다면 정부 정책은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는 발언도 덧붙였다.

이런 발언은 그동안 정부가 고수해온 '2천명 증원'에 벗어나 조정 여지를 처음으로 둔 것이다.

◇1일 의대 증원 관련 윤석열 대통령 대국민 담화를 지켜보는 의료진과 내원객들. 사진=연합뉴스

정부는 그동안 "의료개혁을 특정 직역과 흥정하듯 뒤집는 일은 없을 것", "2천명 증원은 최소한의 확충 규모" 등의 발언을 통해 의사들과 대화는 하더라도 '2천명 증원'은 건드리지 않겠다고 강조해왔지만, 여기서 한걸음 물러선 것이다.

대통령실도 이러한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재확인했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전날 방송에 출연해 "2천명 숫자가 절대적 수치란 입장은 아니다"며 "정부는 2천명 숫자에 매몰되지 않고, 의대 증원 규모를 포함해 더 좋은 의견과 합리적 근거가 제시된다면 정책을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오랜 기간 동안 절차를 거쳐 산출한 숫자이기 때문에 이해 관계자들이 반발한다고 갑자기 1천500명, 1천700명 이렇게 근거 없이 바꿀 순 없다"며 "그래서 (의료계가) 집단행동을 할 것이 아니라, 합리적 조정안을 제시해 주면 낮은 자세로 이에 대해 임하겠단 뜻"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입장 변화를 보였지만, 유일한 법정 의료단체인 의협의 반응은 싸늘하다.

전날 김성근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2천명이라는 의대 증원 숫자에 대한 후퇴 없이는 협상할 수 없다"며 정부가 '먼저' 2천명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임현택 의협 차기 회장은 "'입장이 없음'이 공식 입장"이라며 "그 이유조차 말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논평하고 싶지 않다"고 불쾌감을 드러내며 의대 정원을 500∼1천명 줄여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42대 대한의사협회장에 당선된 임현택 소아과의사회장. 사진=연합뉴스

집단행동의 주역인 전공의들과 의대생들도 여전히 강경한 입장이다.

사직 전공의 류옥하다 씨가 지난달 29일부터 전날까지 전공의·의대생 1천58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4.1%는 '한국 의료 현실과 교육환경을 고려할 때 의대 정원을 감축해야 한다'고 답했다.

기존 정원인 3천58명을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31.9%였다. 의대 정원을 감축 또는 유지해야 한다는 답변이 전체의 96.0%를 차지한 것이다.

향후 전공의 수련 의사가 있다'고 답한 응답자의 93%는 복귀 조건으로 '의대 증원·필수의료 패키지 백지화'를 꼽아 정부에 정면으로 맞서는 모습을 보였다.

의료계 내에서는 그나마 의대 교수들이 정부의 태도 변화에 다소 공감하는 모습을 보인다.

조윤정 전국의대교수협의회(전의대협) 비대위 홍보위원장은 전날 브리핑에서 '의료계의 통일된 안을 달라'는 대통령의 요구에 대해 "현실성 있다. 충분히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는 "(전의교협의) 김창수 회장이 의협 비대위 정책위원회 위원장이고, 의협의 김택우 비대위원장, (대한전공의협의회) 박단 대표 등과 끊임없이 7주째 얘기해왔다"며 의료계가 합의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전날 저녁 온라인 회의를 연 전의대협은 이날 대통령 담화에 대한 입장을 발표할 계획이다.

하지만 협상을 위한 통일안을 마련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백지화' 원칙을 포기할지, 포기한다면 어느 정도 수준의 증원을 양보할지, 오히려 정원 감축을 요구할지를 둘러싸고 의견 일치를 보기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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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의대 교수들은 전의비와 전의교협 등 2개 단체를 통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의사단체들은 서로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다고 강조하지만, 통일된 협상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논의를 이끌 '구심점'이 없을 경우 각 단체 사이의 시각차만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의사들과 정부의 협상 테이블이 마련되지 못하고 시간만 흘러가면 의대 정원은 다음 달 '2천명 증원'이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정부가 대학별로 배정한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을 반영해 각 대학은 학칙 개정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이후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승인을 받아' 2025학년도 입학전형 시행계획'을 변경하게 된다.

이렇게 변경된 내용은 통상 5월 하순 공고되는 '2025학년도 대입전형 수시모집요강'에 최종 반영된다. 이는 2천명 의대 증원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마침내 '최종 확정'된다는 뜻이다.

사진=연합뉴스

한편, 김영환 충북지사가 연일 충북에 배정된 인원 사수를 위한 발언을 이어가 주목을 끌고 있다.

김 지사는 이날 공공의료기관인 충주의료원을 방문해 의사 집단행동 상황 파악과 지역 필수의료 대응상황을 점검했다.

이 자리에서 김 지사는 교육부의 의대정원 배정 결과를 언급하면서 "충북지역 의대정원이 89명에서 300명(충북대 200명·건국대 글로컬캠퍼스 100명)으로 대폭 증원된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김 지사는 "그동안 충북에는 정원이 89명밖에 안 되는는 미니의대 2곳(충북대 49명·건국대 글로컬캠퍼스 40명)만 있었다"며 "비슷한 규모의 강원(267명)과 전북(235명)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또 "증원 결정 이후에도 충북은 의대정원이 많은 게 아니다"라며 "교육부 배정대로면 강원은 432명, 전북은 350명, 대전은 400명, 광주는 350명으로 충북보다 많다"고 덧붙였다.

이어 "치료가능 사망자 수 전국 1위, 인구 1천명당 의사 수 전국 14위 등 충북의 열악한 의료현실을 고려하면 이번 의대정원 증원은 결코 과도한 게 아니고 지역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꿔놓은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난 37년간 의대정원에 묶여 적절한 의사 공급이 불가능했는데, 정원 확대로 도민의 생명과 건강을 이제야 지킬 수 있게 됐다"며 "이것은 물러설 수 없는 사안"이라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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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지사는 전날에도 기자들과 만나 최근 도랑에 빠진 생후 33개월 아이의 안타까운 사망사고를 두고 "필수·응급 의료체계의 사각지대에 있는 충북의 현실이 고스란히 반영된 사고"라면서 "충북의 의대 정원 300명은 우리의 미래"라고 말한 바 있다.

김 지사의 이 같은 행보는 의대정원 확대 규모 재조정 가능성이 감지되자 지역 배정 인원 사수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교육부는 오는 8일까지 정원을 확대한 전국 32개 의대를 대상으로 교육여건 현황과 향후 보강 계획을 위한 수요조사를 진행 중이다.

충북도는 이 조사가 완료되면 그 결과를 토대로 도 차원의 지원 계획 및 예산 수립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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