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의료진만 제대로 있었어도…걸어서 병원에 들어간 아내가 죽어서 나와"…부인 잃은 남편 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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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없다" 병원 10곳 거절당해…환자 불편 가중
정부 입장 변화 기대감…타협해 출구전략 마련해야

◇[사진=연합뉴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로 촉발된 의정(醫政) 갈등이 8주차에 접든 가운데 의료 공백으로 인한 환자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12일 부인 장례식을 치른 40대 A씨는 울분을 토했다.

부산에 사는 A씨 부인 B(45)씨는 지난 7일 갑작스럽게 몸 상태가 좋지 않다며 119에 병원 이송을 요청했다.

당시 집에서 불과 2㎞ 떨어진 3차 병원에 가려고 했지만, 이 병원은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아내는 결국 해당 병원에서 10분가량 떨어진 한 종합병원에 입원했다.

이 종합병원에서는 B씨에 대해 '간 검사, 피검사 등을 실시했는데 모두 정상 수치다. 링거를 맞으면 괜찮을 것으로 보인다.'는 취지로 말하며 일주일 동안 입원할 것을 권고했다고 한다.

그런데 당일 저녁 의료진은 갑자기 B씨의 혈소판이 부족하다더니 수혈했고, 몸이 아파 잠을 못 자는 아내에게 수면제를 놨다.

이후 그는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졌고 8일 오전 또 다른 3차 병원으로 이송됐다.

결국 이 병원에서 뒤늦게 간부전, 신장부전을 진단받은 B씨는 10일 오전 3시 숨졌다.

A씨는 "애초 3차 병원에서 아내를 거절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아내가 숨진 것은 의료 공백으로 인해 진작 큰 병원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탓이 크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위독한 상황에서 옮겨진 종합병원과 대학병원에서도 면담은 의사와 했지만, 웬만한 일은 간호사가 다 했으며 소변줄도 제대로 삽입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내를 돌보더라"고 지적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6일 오전 6시 13분께에는 부산 동구에서 가슴 통증을 호소하는 C씨를 태운 구급차가 응급실이 있는 주요 대형 병원 10여 곳에 문의했지만 모두 의사가 없다는 이유 등으로 거절했다.

C씨는 119 신고 45분여 만인 오전 7시께 수영구의 한 병원으로 이송돼 '급성 대동맥박리'를 진단받았지만, 해당 병원에서는 수술이 어려웠다.

결국 C씨는 이 병원에서 50㎞ 이상 떨어진 울산의 한 병원에 오전 10시 30분께 도착해 응급 수술을 받았지만 지난 1일 숨졌다.

유족들은 전공의 집단사직 영향이 있는지 밝혀달라며 국민권익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증상이 발현한 뒤 빨리 병원에 이송돼 긴급수술을 받았다면 목숨을 살릴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했으며,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인한 의료공백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사안이 알려진 후 바로 인력을 투입해 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병원 내 근무 인력 등 당시에 진료나 수술 여력이 없었는지 확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경기도에 사는 D씨는 최근 뇌동맥류 의심 소견을 받아 이달 말 분당서울대병원에서 관련 검진을 받기로 예정돼 있었으나, 며칠 전 일정이 무기한 연기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D씨는 언제 자신의 차례가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일단 관련 진료를 받을 수 있는 2차 병원을 수소문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요새 부쩍 컨디션이 안 좋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예정된 검진 날짜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연기 소식을 들으니 너무 우울하다"며 "온라인 카페 등에서 다른 환자들과 소통하며 진료받을 수 있는 다른 병원을 찾는 중"이라고 말했다.

초등생 자녀의 천식으로 인해 수년째 강원 한 대학병원에 다니는 40대 E씨는 최근 대학병원을 찾았다가 "다음 진료는 10월에 보자"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이전까지 2개월에 한 번씩 병원을 찾았던 E씨는 "처음에는 7월을 10월로 잘못 말씀하신 줄 알았다"며 "날짜를 보니 10월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다 할 대꾸도 하지 못한 채 '만약에 상태가 안 좋으면 응급실을 찾아라'는 당부까지 듣고서는 결국 6개월 치 약만 한 보따리 들고 귀가했다.

E씨는 "주변 지인은 서울에 있는 병원을 찾았다가 어떤 환자가 '왜 진료를 안 봐주냐'며 드러누워 난동 피우는 모습을 봤다더라"며 "환자도, 의료진도 스트레스가 극도로 쌓여 있는 듯해 빨리 이 사태가 해결됐으면 한다"고 바랐다.

◇[사진=연합뉴스]

한편, 의료 현장에서는 '강 대 강' 대치를 이어온 정부 태도가 달라져 하루빨리 출구전략이 마련되길 기대하는 분위기다.

대학병원들은 총선 결과 여당이 패배하면서 의대 정원 증원에 대한 정부의 완고한 입장이 완화되길 기대하는 분위기다.

순천향대천안병원 관계자는 "환자는 줄어들고 교수는 지쳐가는 이 상황이 다들 힘들어서 빨리 마무리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지만 정부가 바로 두손 들고 포기할 것 같지도 않고, 국가 정책을 급격히 유턴시키기도 쉽지 않지 않겠느냐"면서 "이런 과정에 시간만 흘러갈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강원 의료계는 내주 초 발표하기로 한 대통령의 총선 입장에 주목하고 있다.

의료공백 사태와 관련한 대통령 발언에 따라 집단행동 지속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전남지역 병원 의사들 사이에서는 여권 총선 패배 이후 의대 정원 증원 강행 동력이 어느 정도 상실되지 않겠냐고 내다보며, 정부와 의사 양측이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4월 말 의대생 유급 마지노선이 다가오고, 이번 달을 지나면 전공의 수련일수를 사실상 올해 채울 수 없게 돼 전공의 이탈로 인한 진료 차질 파장이 향후 4∼5년간 이어질 것을 병원 측은 우려하고 있다.

전공의 이탈사태 장기화로 병원 운영이 한계에 다다른 것도 조속한 협상 여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광주지역에서도 총선이 끝난 만큼 정부와 협상에 적극 나서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기류가 흐르고 있다.

광주 한 상급종합병원의 한 의사는 "의사들 사이에서 총선이 끝난 만큼 서로 타협해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며 "의사 단체들은 정부와의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고, 정부도 유예나 증원 규모 축소 등 더 진전된 중재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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