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타임머신 여행 '라떼는 말이야~']공지천 야외빙상장…“우리는 강 위에서 스케이트를 탔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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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1월 공지천 특설링크에서 열린 제1회 국민학교대항 스케이트 대회 모습. 사진=강원일보DB

춘천에 있는 공지천에 대해서 아시는지. 대룡산에서 발원해 춘천의 효자동을 흐르는 하천으로 공지어(孔之魚)가 많이 살기 때문에 공지천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춘천읍지’에 쓰여 있다. ‘춘천의 지명유래’에 따르면 퇴계 이황선생이 춘천 외가(퇴계동)에 왔다가 고기잡이를 한 후, 머슴에게 여물을 썰게 한 다음 삼태기에 담아 곰지내(공지천)에 버렸는데 여물로 쓴 짚이 물고기(공지어)로 변했고, 공지어가 산다고 해 공지천으로 불렀다는 기록도 있다.

놀게 그리 많지 않던 시절, 공지천은 춘천문화와 스포츠의 중심지였다. 강원일보가 주최하고 있는 50년 전통의 ‘모자 사생대회’가 열리던 곳이었고, 전국체육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이 카누 연습을 하거나 학도체전 씨름대회가 열렸던 장소였다. 그런가 하면 1970년대에는 전국 낚시대회까지 열렸으니, 영화관으로 치면 멀티플렉스 같은 그런 곳이었다. 언감생심 실내 빙상장은 꿈도 못꾸던 시설, 겨울철의 공지철은 천연 야외 빙상장으로도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지금이야 공지천이 언제 얼었는지 기억도 가물 가물하지만, 1960, 70, 80년대만 해도 꽁꽁 얼어붙은 공지천 수면 위를 가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겨울 한 철, 논에 물을 받아 영업하는 사설 빙상장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퀄리티를 갖추고 있었으니, 그 당시 꽤나 많은 빙상대회들이 공지천에서 열리곤 했다. 물론 살을 에는 춘천의 겨울날씨도 한 몫하기는 했다.

◇ 1983년 공지천 스케이트장 모습. 사진=강원일보DB

1968년 ‘제1회 전국 남녀중·고교 종합빙상선수권대회’가 열린 곳이 바로 공지천이었다. 천혜의 환경을 곁에 두고 있는데다, ‘특설링크’로 불린 공지천 빙상장을 연습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춘천지역 학생들의 성적은 항상 상위권이었다. 이 대회에서 춘천고 김정득선수가 남고 5,000m, 1만m부에서 우승을 하고, 남중부 1,500m, 3,000m에서 우승한 춘천중 김승모 선수는 종합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이듬해인 1969년에는 2만여명의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900여명의 스케이터들이 참가한 ‘제50회 전국체육대회동계대회’가 원병의 춘천시장(14대)의 개회선언과 함께 열리기도 했다. 대회 첫 날 대회신 13개가 쏟아진 당시 공지천에 대한 언론의 평가는 이랬다. “삼면이 둑으로 쌓여 자연방풍이 되었고, 빙질과 경비면에서 여태까지 볼 수 없었던 훌륭한 것이었다(경향신문 1969년 1월 13일자 6면 보도)” 춘천시는 내친김에 공지천을 내세워 1970, 71년까지 동계체전을 내리 3년 유치한다. 특히 1971년 대회를 앞두고는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스탠드와 전망대까지 만들면서 ‘빙상의 도시’ 굳히기(?)에 들어간다. 1972년 제8회 빙상인추모대회를 시작으로 전국에서 진행된 10개의 빙상 경기 중 절반에 해당하는 5개가 모두 춘천에서 열렸고, 그 중심에는 늘 공지천이 있었다.

◇ 1983년 공지천 스케이트장 모습. 사진=강원일보DB

빙상인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장소가 되다 보니 1973년 1월에는 당시 강원도빙상경기연맹경기임원인 손모씨가 얼음판에서 인연을 맺은 신부와 공지천 특설링크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으니 빙상인들에게 공지천은 상당히 상징적인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74년에는 ‘제1회 이디오피아 황제배쟁탈 전국시도대항 빙상경기대회’도 열렸는데, 이 황제배는 셀라시에 이디오피아 황제가 박정희 대통령에 보내온 순은으로 된 우승컵으로 이디오피아 참전기념비가 있는 공지천이 최적지로 꼽히면서, 경기가 진행됐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빙질이 좋기로 유명하던 겨울의 공지천은 얼음이 얼지 않으면서 그 명성을 조금씩 잃어간다. 이상 기온이 얼음이 얼지 않는 첫 번째 이유로 꼽혔지만 오염과 함께 댐에서 유입되는 온수 등이 원인으로 꼽혔다. 그렇다고 해서 1980년대에 접어들어 아예 빙상경기가 열리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실내빙상장들이 늘어나면서 공지천 빙상장은 아련한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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