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법정칼럼] 반성문에 관한 이런저런 생각

박현진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 부장판사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반성문을 받아보는 사람은 형사재판을 담당하는 판사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필자도 학창 시절 선생님의 명에 따라 여러 차례 반성문을 써본 경험이 있는데, 당시 반성문 한 페이지 분량을 채우지 못해 머리를 싸매고 끙끙대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런데 형사재판을 받는 피고인들 중 상당수는 판사가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반성문을 써낸다.

써내는 반성문 유형은 다양하다. 유년 시절부터 삶의 과정을 회고하는 자서전 형, 향후 사회에 나가면 성실히 가족을 부양하겠다거나 사회에 봉사하며 살겠다는 등의 다짐형, 성경 필사, 독후감, 영어 단어나 한자 깜지 제출 등 학습형, 그 밖에도 여러 유형이 더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가끔은 반성문을 쓰는 것 자체가 지탄받는 경우도 있다. 특히 사회적으로 많은 이목을 끄는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있는 피고인이 법원에 여러 차례 반성문을 써내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한 언론기사를 가끔 보게 된다. 사실 피고인이 반성문을 써내는 것은 전혀 새로운 기삿거리가 아님에도, (아마도 기자의 의도대로) 이 기사는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자아냈고, 거기에는 수많은 댓글이 달려있었다. 대체로, ‘저렇게 나쁜 사람이 실제로 반성을 할 리가 없다, 반성문을 통해 법원을 기만하려 한다, 판사들은 말로만 하는 반성에 잘도 속아서 솜방망이 처벌을 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그럼 과연 피고인의 반성은 형사재판에 유리하게 참작될 만한 요소일까? 이에 대한 답은 우선 ‘그렇다’이다. 판사들이 형사재판의 양형에 필수적으로 참고하는 양형기준에는 ‘진지한 반성’을 유리한 사유로 고려하게 되어있고, 집행유예를 고려함에 있어 ‘진지한 반성 없음’을 부정적 사유로 고려하게 되어있다. 굳이 양형기준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실생활에서 말썽을 부린 아이가 부모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경우와 끝까지 자기가 잘했다고 우기는 경우를 비교해보면, 피고인의 반성을 유리하게 참작해야 한다는 점에는 대부분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진짜 문제는 반성한다고 말하는 피고인들 중에 진정으로 반성하는 피고인을 어떻게 가려내는지에 있다. 사실 대부분의 피고인들은 재판 과정에서 반성한다고 진술하고(심지어 범행을 부인하는 경우에도, 최소한 물의를 일으킨 점을 반성한다고 말한다), 판사들이라고 해서 사람의 속마음까지 들여다볼 특별한 재간이 있는 것은 아니기에, 누가 진짜 반성하는지보다는 오히려 간혹 있는 ‘진지한 반성 없음’에 해당하는 피고인들이 유독 눈에 띌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반성하는 피고인이 평균적 피고인의 모습이 되고, 반성하지 않는 피고인을 특별한 피고인으로 취급하는 경향으로 흐르게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나 근래 반성문 대필 업체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언론기사까지 접하고 보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진정으로 반성하는 피고인을 가려내는 일이 점점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그렇더라도 반성문은 피고인들이 재판부를 향해 속마음을 드러낼 수 있는 몇 안되는 수단임이 분명하다. 형사재판이라는 인생에서의 중대한 경험을 앞둔 피고인들이 떨리고 초조한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아 온전히 자기 내면에 집중하면서 반성문을 쓰는 그 순간만큼은, 어떤 순간 못지않게 진솔하고 절실해지는 순간일 것이라 믿고 싶다. 다만, 진지한 반성을 오직 반성문을 통해서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도 덧붙이고 싶다. 우리가 누군가를 정말 사랑할 때, 연애편지만으로 사랑을 표현하지 않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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