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고문 기술자 이근안 전 경감의 사망 소식에 피해를 입은 납북귀환 어부들(본보 지난 2021년 11월10일자 2면 보도)은 비통함과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가해자가 살아 생전 그 어떤 반성도 사과도 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1985년 12월 영문도 모른 채 납치돼 이근안 전 경감으로부터 전기 고문을 당한 김성학(76·속초)씨는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이름 석자를 잊지 않았다.
김씨는 “복역 뒤 목사가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라도 피해자에게 먼저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끝내 아무런 사과도 듣지 못했다”며 “그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이 나고 한이 맺힌다”고 목이 메인 채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근안의 죽음으로 조명해야 할 문제는 개인의 악행을 넘은 당대 정권의 국가폭력”이라고 짚었다.
이어 “고문 뒤에는 허위자백을 증거로 채택한 검사와 간첩몰이로 권력을 유지한 국가가 있었다”며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먼저 사죄하고 명예 회복을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납북귀환어부 피해자인 김영수(72·동해)씨의 사례도 국가폭력이 여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김씨는 1971년 속초에서 조업 중 납북됐다가 1년간 북한에 억류된 뒤 귀환했지만, 오히려 국가로부터 불법 월북자이자 간첩으로 몰려 극심한 인권침해를 겪었다. 반공법·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0년간 옥살이를 한 김씨는 지난해 4월 춘천지방법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재심 절차가 시작되지 않았다.
김씨는 “가해자는 죽으면 끝나지만 피해자는 트라우마와 고통 속에 살아간다”며 “전과자로 낙인찍혀 일자리도 못 구했고 동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아왔다”고 했다. 이어 “억울함을 풀기 위해 납북귀환어부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하루빨리 통과되고 개인 재판도 진행되길 바라지만 죽기 전에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실제 재심을 준비하는 피해자와 유족들 중에는 수사기록을 요청하고도 1년 넘게 받지 못하거나 재심 청구 절차가 지연되는 일이 적지 않다. 납북귀환어부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역시 사건 발생 반세기가 지난 지난해 처음 발의됐다. 이 전 경감의 죽음이 국가폭력을 상징한 개인의 퇴장일 뿐 사과와 책임을 미루는 국가의 태도는 여전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지난 26일 성명을 내고 “대한민국에서 다시는 고문과 인권유린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엄중히 새겨야 한다”며 “피해자 상처 치유와 명예회복이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한편, 이근안은 1970~80년대 공안 사건을 맡아 민주화 인사 등을 수사하며 고문을 주도한 인물이다. 납북귀환어부 김성학씨를 불법 감금하고 고문한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아 복역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