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승자의 기록 너머 인간 ‘단종’을 그리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읽어주는 뉴스

- 서용선작가, ‘단종그림’ 연합전시 20일 영월관광센터에서 개막
- 영월·서울 순회…“40년의 붓질, 비운의 왕 역사에서 건져내다”

영화 ‘왕과 나는 남자’가 역대 흥행 2위에 오르는 등 단종 신드롬이 대중문화를 휩쓸고 있는 가운데, 미술계에서도 단종 서사를 모티프로 한 대규모 전시가 마련돼 눈길을 끌고 있다. 한국 구상미술의 대표 작가 서용선(전 서울대 미대 교수) 화백이 지난 40년간 천착해 온 단종 연작을 한자리에서 선보이는 연합 전시 ‘서용선의 단종그림’ 전이 오는 20일 영월관광센터 전시실을 시작으로, 영월과 서울의 갤러리 4곳에서 이어진다. 영월 전시 기간 중인 24~26일은 영월군 일원에서 단종문화제도 함께 열려, 지역의 전통 제의와 현대 미술이 공존하는 독특한 문화 체험의 장이 펼쳐질 전망이다.

 서 화백이 단종의 비극에 깊이 천착하게 된 계기는 1986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월 청령포를 방문한 그는 호장(戶長) 엄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는 환영을 보게 됐다고 한다. 이는 세상을 떠난 부친의 이미지와 겹쳐지며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서구 미술에 열등감이 들던 차에 단종과 사육신 같은 소재가 인류 보편적인 비극의 예술 소재가 되겠다고 생각했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이후 그는 철저한 현장 답사와 역사 탐독을 거치며 40년째 수많은 인물과 사건을 화폭에 담아왔다.

◇서용선 作, ‘노산군-청령포’

 이번 전시는 단순한 실록(승자의 기록)의 모사를 넘어선다. 계유정난이라는 폭력적 정변 속에서 두려움에 떠는 신하들, 왕위에서 쫓겨난 소년 왕의 고독, 목숨을 걸고 신념을 지킨 엄흥도의 결기를 치밀하게 끄집어낸다. 핏빛처럼 붉은 원색과 거칠고 일그러진 형태로 대표되는 서 화백 특유의 파격적 화풍은 수백 년 전 인물들이 느꼈을 극한의 공포와 고뇌를 여과 없이 전달한다. 작품 앞에 선 관람객은 자연스레 묻게 된다. “과연 인간의 진짜 본성은 무엇인가”라고.

 ‘서용선의 단종그림’ 연합전시는 다음달 3일까지 열리는 영월관광센터 전시와 함께 △디스코스 온 아트(22일~5월23일) △갤러리밈(22일~5월29일) △아트 스페이스 3(22일~5월20) △갤러리 JJ(23일~6월6일·이상 서울)에서 이어진다. 이와함께 오는 30일에는 영월 청령포와 장릉, 영월 전시실을 직접 둘러보는 ‘현장 답사 워크숍’이 진행되고 단종과 관련된 회화 및 드로잉 200여 점이 집대성된 단행본도 출간될 예정이다.
 

◇서용선 作, ‘청령포’

 전시를 기획한 정영목 서울대 명예교수는 “(서화백의 작품)서사적이며 표현적이기 때문에 단순히 보고 느끼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읽어야 할 작품’”이라며 “단종애사는 시공간을 초월해 지금 세계에서도 통하는 바, 역사의 끈을 놓지 않는 화가의 태도는 AI만큼이나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석기기자 sgtoh@kwnews.co.kr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라이프

이코노미 플러스

강원일보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