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新 강원기행](39)동해시 망상동 3형제 마을 '약천·초구·괴란'

"이 권농가 무대가 우리 마을이야"

◇약천마을 전경.

약천마을과 초구마을 괴란마을 등 동해시 망상동 망우리봉 아래의 3형제 마을은 주민들마다 근면 성실, 부농의 꿈을 알차게 일궈 나가고 있다.

동해고속도로 서쪽에 둥지를 튼 이들 마을은 따사로운 봄햇살이 비춰드는 야트막한 야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등 산세가 수려, 더할 나위없이 평화롭게 비춰지고 있다.

특히 약천마을과 초구마을 괴란마을은 걸어서 10분이내 거리에 가깝게 자리잡고있는 만큼 주민들도 형제 자매나 다름없이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다.

김옥녀(82)씨는 “망우리봉 아래 3형제 마을은 경치가 아름다울 뿐더러 인심도 넉넉해 60여년간의 시집살이가 전혀 힘이 들지않았다”고 했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 재 너머 사래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

이들 3형제 마을중 약천마을은 조선조 숙종때 정치가였던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1629∼1711년)의 권농가 시조 작품의 무대가 됐던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남구만은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실렸던 시조를 통해 농촌의 아침 정경을 그림같이 묘사해내며 지역 주민들에게 근면 성실의 교훈을 일깨워줬다.

발락재와 장전(長田) 약천(藥泉) 등 약천마을 일대에 현재까지도 전해져 오는 지명들은 이곳이 약천 시조의 산실이 됐던 곳임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윤옥남(82)씨는 “약천은 수량이 풍부하고 여름엔 차가운 샘물, 겨울엔 따뜻한 샘물이 사시사철 펑펑 솟아올라 마을 아낙네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약천마을은 남구만이 1689년 희빈 장씨의 소생인 균(均)의 세자 책봉을 반대하다가 유배왔던 곳이며 그는 어려운 속에서도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소론의 영수격 정치인으로 1683년 병조판서 1684년 우의정과 좌의정 1687년 영의정에 올랐었지만 1689년 약천마을로 유배된후 1년여간 머물렀다.

1687년 영의정에 복귀하기도 했던 남구만은 약천마을 유배기간중엔 주민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동해지역 학문의 기틀을 다지는데 앞장섰다.

김강래(82)씨는 “약천마을 등지 주민들은 남구만 시조를 교훈삼아 오래전부터 주경야독하며 농사일과 공부 등에 열중, 모범적인 생활상을 펼쳐나가고 있다”고 했다.

주민들이 1727년 노곡서원을 세워 봄과 가을 제사 지내며, 약천의 깊은 학식과 고매한 인격을 흠모하던 약천마을은 현재 문화마을로 지정돼 있다.

이에 이어 동해시는 1997년부터 남구만 얼 선양사업을 추진, 약천마을에 약천사와 동·서재 약천각 시조비 시조 체험관 등 시설을 갖춰왔다.

시조 체험관 등 시설은 시조 체험과 시조 창작 등을 위한 문학공간으로 뜻깊게 활용되고 있으며 매년 봄이면 전국시조경창대회가 열리고 있다.

박수성(69)씨는 “약천 남구만 선생의 얼을 기리는 전국시조경창대회가 열릴 때면 저절로 흥이 난다”며 지속 발전을 기원했다.

약천 샘물을 품에 안고있는 약천마을 등지엔 조선조 이래 강릉 김씨와 울진 임씨 울진 장씨 강릉 박씨 등이 잇따라 이주해 살고 있다.

이처럼 약천마을 등지는 학구열이 높아 양반촌으로 불리는 한편 기름지고 넓은 뜰을 끼고 있어 살기도 넉넉한 마을로 알려지고 있다.

김금란(75)씨는 “50여년전 시집올 때만 해도 다른 마을은 옥수수와 감자 등으로 연명하곤 했지만 3형제 마을만큼은 하얀 이밥을 먹고 살았다”고 했다.

특히 근면 성실한 생활을 강조하던 남구만의 시조 정신을 되새기며 햅쌀과 산채 재배 등 농업 분야에 남다른 열정을 쏟고있어 생업 기반이 반석 위에 올라서고 있다.

농협동해시지부에 따르면 초구마을 등지 농민 17세대는 동해쌀연구회를 결성, 1995년부터 올벼 재배를 시도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바닷가와 인접한 탓에 해풍 피해 등이 잇따라 초구마을 등지는 올벼 재배가 쉽지 않았지만 동해쌀연구회는 각고의 노력끝에 10여년이 지난 현재 완전 성공했다.

그간 진부벼에서부터 운두벼 오대벼 등으로 종자를 바꾸는 한편 비료 시비 등에 만전을 기울여 온 덕에 추석 명절전 쌀을 수확, 주민들에게 향토산 햅쌀 밥맛을 선보이고 있다.

농협 판매장에서 본격 판매되는 초구마을 햅쌀은 4kg에 1만2,500원 10kg에 2만9,000으로 판매돼 여타 시중 쌀보다 20%가량 비싸다.

그러나 구수한 밥맛이 뛰어나 소비자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데다 수요량에 비해 생산량이 턱없이 부족, 추석 명절이 되기도전 동이 나버리는 등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3만6,000kg 가량 수확된 망상동 햅쌀은 4kg짜리 9,000상자에 불과, 주민 9만6,000여명이 이를 골고루 맛보기는 힘든 실정이어서 증산책이 모색되고 있다.

이와 함께 약천마을 등지 농민 16세대는 곰취 작목반을 결성, 2006년부터 한겨울에도 채취할 수 있는 곰취를 재배해 수도권 등지 소비자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매년 10월말 파종, 12월 중순께부터 소비자들의 식탁에 오르고 있는 곰취는 쌉싸래한 맛이 뛰어난데다 요통과 관절통 타박상 등에도 특효여서 날개 돋친듯 출하되고 있다.

정월 대보름맞이 행사 등으로 수도권 등지 소비자들과 직거래시 1kg 1상자당 8,000∼1만원씩 고가에 팔아도 없어서 못 팔 정도이다.

이와 함께 곰취는 8월부터 수확되는 여타 작목들과는 생육 기간이 차별화되는데다 재배 기술도 발전하고 있어 농업 소득도 높아지고 있다.

곰취 재배를 통한 농업소득은 330㎡당 700만원을 상회, 당초 6,600㎡가량이던 재배 면적이 조만간 3만㎡ 이상 규모로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해부터 초구마을 등지 농민들은 곰취에 이어 여타 산채와 약재용 엄나무를 재배, 고소득을 올리려는 노력도 시도중이어서 주목받고 있다.

엄나무는 향긋한 맛의 어린 순이 특급 산채로 각광받고 있을 뿐더러 나뭇가지 등은 신경통과 만성간염 중풍 등에 효과가 좋아 곰취에 못지않은 소득 증대가 기대되고 있다.

최성혁(57)씨는 “친환경 쌀과 곰취 등 고소득 작목 재배엔 주민 모두가 비지땀을 흘려가며 노력, 짭짤한 소득을 올리고 있다”고 했다.

박창근(72)씨는 “곰취에 이어 누룩치 참나물 등 산채 작목을 계속 개발해나가면 쌀농사만 지을 때보다 농사짓는 재미가 커질 것”이라고 했다.

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약천마을은 2006년 농촌건강 장수마을로 선정돼 마을내에 정자를 건립하고 등산로를 개설하는 등의 프로그램을 벌이기도 했다.

또 새농어촌건설운동을 추진, 친환경 오리쌀 명품화 단지 1개소 5.2ha와 동해 해오름쌀 찹쌀단지 2개소 20ha를 조성하는 등의 사업에도 나서고 있다.

김철민(48)씨는 “현재 10ha가량 규모인 친환경인증 무농약 농산물 재배 면적을 대폭 확대, 약천마을 등지를 친환경 농업의 메카로 변모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했다.

최병림(75)씨는 “농촌건강 장수마을 선정에 따라 마을내에 게이트볼장이 개설되는 등 여가 공간이 대폭 늘어나 훨씬 더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새농어촌 건설운동 추진은 주민들끼리 정신분야와 소득분야 환경분야 등으로 역할이 분담된 추진단을 결성하는 한편 최성혁씨가 단장을 맡아 앞장, 활기가 넘치고 있다.

이에 따라 정신분야로는 마을 홈페이지 운영과 친환경세제 쓰기 소득분야로는 친환경 인증 농산물 생산 환경분야로는 쓰레기 분리수거 생활화 등에 힘쓰고 있다.

농업소득을 높여주는 등 마을 발전에 가속도를 붙여줄 새농어촌 건설운동 추진엔 청장년층은 물론 노년층 주민들도 적극 동참,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다.

이에 이어 약천마을은 지난해 정보화 마을로도 선정돼 주민들은 마을 홈페이지를 이용, 친환경 쌀과 곰취 등의 판로를 한층 더 수월하게 개척할 수 있게 됐다.

김일래(45)씨는 “홈페이지를 이용한 판로 개척으로 생산자와 소비자가 친환경 쌀과 곰취 등을 직접 거래, 유통마진을 대폭 줄일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김동혁(57)씨는 “마을 홈페이지를 보다 폭넓게 활용하면 망상해수욕장과 오토 캠핑리조트 관광객 등도 연계 유치, 농촌 관광테마 사업도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농업문화의 뿌리가 깊은 마을답게 괴란마을 등지에선 수준 높은 농악놀이를 계승 발전시켜 향토문화인 등으로부터 폭넓은 관심을 끌고 있다.

300여년전인 조선 효종(1649∼1659)때 부터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농악이던 괴란 고청제 농악은 강원도 무형문화재 지정이 유력시 되고 있다.

지신밟기와 가세놀이 십자놀이 멍석말이 똘똘말이 등 순으로 이어지는 괴란 고청제 농악은 정월 대보름날 서낭당에서 고청제를 지내며 펼쳐온 농악이다.

2006년 마을 주민들간에 보존회가 결성된 괴란 고청제 농악은 2007년 제48회 한국 민속예술제에서 최우수상을 수상, 전국적인 스포트 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 9일엔 강원도 문화재위원 5명이 괴란마을 일대를 현지 실사한뒤 고청제 농악의 문화재적 가치를 높이 평가, 무형 문화재 지정 가능성이 크다.

동해지역에선 그간 보물 1277호인 삼화사 삼층석탑 등 18점이 문화재로 지정되거나 등록됐지만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문화유산은 없다.

서순녀(57)씨는 “괴란 고청제 농악은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거리가 될만한 농악”이라며 무형문화재 조기 지정을 기대했다.

홍연자(63)씨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괴란 고청제 농악은 토속적인 가락과 춤사위 등이 일품이어서 누구나 호평중”이라고 했다.

동해=장성일기자 sijang@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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