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월요칼럼]인문도시 강릉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연호탁 가톨릭관동대 교수

강릉지역 교통지도가 달라졌다. 신호등이 있던 자리가 대부분 로터리로 변했다. 그런 변화에 민주 시민인 나의 자유의사는 반영되지 않았다. 대의 민주주의라고 해서 선거에서 뽑힌 시장 이하 시의원과 도의원으로 불리는 선량들이 저들끼리 모여 회의를 하고 의사 결정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시스템 민주주의 하에서 기실 개인은 그 어떤 정치적 권력을 갖지 못한다. 만들어진 법령을 준수하고 과세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것 이외에 달리 참여 민주주의의 일원이 되지 못한다.

무능한 정부나 조례의 임의 개정에 대한 시민의 불복종은 활자 상으로는 가능하나 현실적으로는 통제국가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불가능하다. 어떤 제도고 구성원을 백퍼센트 만족시킬 수는 없기 때문에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의 국가 운영 체계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 보다는 자유민주주의 하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의 민주적 자질과 자유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소감을 피력하려 한다.

우리는 더 이상 독재국가에 살지 않는다. 자유는 양보에 바탕을 둔 타협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의 주장이나 요구가 정당하므로 수용되기를 원하는 자유가 있듯, 그 반대 또한 자유라는 점을 가납할 용기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각도에서 시민 교육이 필요하다고 본다. 자유를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사회 조성은 일치된 시민의식에서 비롯된다. 지방 정부의 역할 내지 의무는 공동체 구성원의 인식 전환을 돕는 것이다.

강릉시에 대한 중앙정부의 관심과 재정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 강릉이 영동지방의 중심이며 문화도시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하는 때문이라고 본다. 관광도시, 스마트 도시, 무장애 관광도시로서의 강릉이 문화도시로 일원화되는 것은 바람직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문화에 대한 적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문화도시 정착에 혼선이 없다.

필자가 책임을 맡고 있는 인문도시 지원 사업은 국가가 지원하는 거대한 국책사업으로서의 문화도시 조성사업과 여러 면에서 관련이 있다. 문화와 인문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로터리 진입 시 우선 차량에 대해 알고 기본 규정을 따르는 것은 인문에 속한다. 급해도 차례를 지키고 양보하는 풍토는 아름다운 교통문화가 된다. 명칭이 어찌 되었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일에 부대낌이 없고 사람 간에 마찰이 없다면, 대신 기분 좋은 옷소매 스침과 그로 인한 선한 이웃과의 교류가 있는 곳이라면 거기가 인문도시다. 문화도시는 인문의 삶을 복판에 둘 때 그 가치가 빛나게 된다.

학교 앞 로터리에 들어서기 전 좌우를 살피며, 강릉역 앞 육거리 로터리를 느리게 돌아가며 나는 민한 운전솜씨를 스스로 탓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육식을 포기한 자유 때문에 여러 사람의 눈총을 받는 반민주적 삶의 불편함이 없기를 바란다. 명나라 말기 문장가 장대張岱는 “벽(僻)이 없는 사람과는 사귀지 말라. 깊은 정이 없기 때문이다. 흠이 없는 사람과는 사귀지 말라. 진실한 기운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지당한 말씀이다. 내 식으로 약간의 수정을 가한다면, 흠이 없는 자보다는 자기 흠을 인정하지 않는 자와는 사귀지 않겠다고 말하겠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자유를 인정하는 인문도시 강릉을 나는 꿈꾼다. 다른 이가 나와 다르듯, 나 또한 남다른 편벽(偏僻)이 있다. 고독하게 새로운 것을 개척하고 전문 기예를 익히는 것은 오직 벽을 가진 사람만이 가능하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 선생의 말씀이다. 남을 이롭게 하는 편벽된 자유인이 많아질 때 강릉은 소소한 행복 넘치는 인문도시가 될 것이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또 하나의 상처, ‘강제징집과 녹화사업’

납북귀환어부 간첩조작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