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구 절벽’으로 시름하는 농촌지역에 새 숨을 불어넣는 사람들이 있다. 색다른 아이디어와 농법으로 승부하는 ‘귀농·귀촌인’들이다. 강원도는 이미 귀농과 귀촌을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 입소문을 타고 성지로 부상하고 있다. 강원도가 작성한 ‘제 2차 강원도 귀농귀촌 종합계획’에 따르면 2022년 도내 귀농·귀촌 인구는 3만1,920명으로, 2017년 2만9,525명에 비해 2,395명 증가했고, 청년층 귀농인구 비율이 지속적으로 과반 이상을 차지하는 등 새로운 농촌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강원일보는 창간 77주년을 맞이해 강원도의 ‘대표 귀농인’ 4명을 집중 탐색한다.
■이규호 춘천 정직한농장 대표=올해로 32세인 이규호 대표는 춘천의 대표 작물인 ‘토마토’에서 월등한 소득을 올리고 있는 젊은 귀농인이다. 귀농 2년 만에 1만3,220여㎡(4,000평) 규모 농장에서 2021년 100톤, 올 들어 125톤을 수확했을 정도로 대규모 농사의 ‘달인’이 됐다. 2020년 말 귀농한 이 대표에게는 코로나19 위기도 ‘기회’였다. 온라인 판매 비율이 2021년 30%에서 올 들어 70%로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귀농 전 5년간 원주 농약회사에서 근무하며 농가 세미나 진행 업무를 했었던 점이 큰 자산이 됐다고. 이 대표는 “당시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주로 세미나를 듣는 모습을 보고, 내가 귀농을 해 젊은 사람 중심의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면 농업 분야에서도 높은 소득 창출을 기대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며 “현재는 1차 산업인 작물 재배에 집중하고 있지만 최종적으로 3차 산업까지 접목해 사업을 크게 확장해 가려고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철성 평창 베리딜리셔스 대표=평창에는 아주 특별한 딸기가 있다. 여름에 나오는 딸기다. 이철성 대표가 운영하는 농업회사법인 평창 베리딜리셔스 주식회사는 평창 여름딸기 재배, 생산, 유통, 가공 사업을 위해 만들어졌고, 지금은 스마트팜, 카페, 레스토랑을 아우르는 종합 농업회사로 성장했다. 2022년 한 해 매출 추산액만 4억원 이상이라고. 이 대표의 여름딸기는 한여름에 딸기가 먹고 싶다던 아내의 한 마디로 시작했다. 극진한 ‘아내 사랑’이 복덩이를 가져다 준 셈이다. 한여름에는 왜 딸기가 없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8년 정도 공부를 하다가 40대 이후의 삶은 여름딸기 농부의 삶을 살기로 했다. 한여름에도 서늘한 고랭지 지역을 찾다가 평창으로 귀농을 결심했다고. 직업 군인이신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 철원에 잠깐 살았었다. 이후 호주에서 계속 거주하다가 2016년 평창으로 귀농 후 2017년 농장을 설립했다. 이 대표에게 평창은 운명이다. ‘여름딸기’를 재배하기 위해서는 한여름에도 13~23도 정도의 온도를 유지하는 서늘한 지역이 필요한데, 고랭지 평창은 최적의 조건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귀농 8년 차로 접어들며 귀농인보다는 이제는 현지인으로 불리고 싶다는 이 대표는 귀농인들에게 “편안하고 여유로운 농촌생활을 보장한다는 생각보다는 먼저 거주하고 있는 도시 지역에서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며 “정착하게 될 지역사회를 위해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다가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민원홍 횡성 자연마중 대표=민원홍 대표는 다래 농업과 가공의 달인이다. 토종다래 잼, 완두다래 잼, 토종다래 청, 토종다래 천연비누까지 민 대표의 손에서 모두 만들어진다. ‘판매’에 대한 고민도 빠지지 않는다.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SNS 활동을 통해 판매 통로를 개척했던 초기를 지나 현재는 온라인 마켓 입점까지 성공, 새로운 판로를 속속들이 개척하고 있다. 2020년에는 농촌융복합경진대회 농림축산식품부장관상 대상을 수상하는 등 자타가 공인하는 ‘모범 귀농인’이다. 민 대표와 횡성의 만남은 마치 운명 같았다. 충청북도 출신으로 경기도 광주에서 직장생활을 해 강원도하고는 연이 없었다. “처음부터 강원도로 오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으나 귀농 준비를 하며 여러 지역을 알아보던 중 횡성이 가장 마음에 이끌렸다”고. 지금 횡성은 민 대표에게 천혜의 자연과 비옥한 땅으로 기름진 수확물을 주는 보배 같은 지역이다. 민 대표의 향후 목표는 농업의 가치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것. 귀농을 하며 느낀 삶의 가치들을 지켜가며 살아가는 것이 목표라는 민 대표는 “농업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는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유민호 철원 드림농원 대표=유민호 대표는 12세부터 씨름 선수로 활동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엘리트 씨름 선수로 활동할 당시에는 대통령기 전국장사씨름대회에서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정상에 올랐던 자랑스러운 유 대표의 모습은 본보 2008년 4월16일자 지면에도 소개돼 있다. 그러나 2015년 예기치 않은 부상으로 소속팀에서 나오게 됐다. 재활치료가 끝났지만 선수 복귀는 여의치 않았고, 고향인 철원으로 내려왔다. 어머니의 권유로 2016년 연말부터 사과 재배를 시작했다. 농업은 전혀 모르는 생소한 분야였기에 처음에는 정말 어려웠다고. 기술력 습득부터 시작해 금전적인 부분도 많이 필요했다. 초반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철원군농업기술센터 등 관련 기관에서 자문도 구하고, 관련 교육도 성실히 들었다. 그 결과 귀농 4년 차였던 2019년 귀농·귀촌 분야에서 강원도지사 표창을 받기도 했다. 결국 농업에서도 ‘천하장사’가 된 유 대표의 포부는 사과를 잘 키우는 최고의 사과 명장이 되는 것이다. “20년 후 쯤에는 나도 전국의 사과농가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오르고 싶다”고 포부를 밝히는 모습이 눈부시다.
박서화·류호준기자
◇이철성 평창 베리딜리셔스 대표
◇유민호 철원 드림농원 대표
◇민원홍 횡성 자연마중 대표
◇이규호 춘천 정직한농장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