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saekhwa’. 한국의 아트신에서 가장 활기를 띠고 있는 장르인 ‘단색화’의 당당한 영문 표기다. 2012년 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국의 단색화’전이 열린 이후 국내에서나 세계 미술계에서 단색화의 인기는 고공행진 중이다. 단색화를 거론할 때마다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바로 한국 모더니즘 미술의 산역사이자 단색화의 주역인 박서보(1931~)다.
■묘법으로 수행하는 ‘영원한 단색화 사나이’
전갈자리의 기운을 타고나 정열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박서보는 강단 안팎에서 미술계의 발전을 이끌었다. 1962년 대학 강단에 선 이후 1997년까지 홍익대에서 교수, 조형미술연구소장, 산업미술대학원장, 미술대학장을 역임하고, 강단 밖에서는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등을 지내며 한국 모더니즘 미술을 대표하는 단색화 열풍을 주도했다. 구순을 넘긴 지금도 여전히 단색화의 참된 가치를 찾아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처음부터 단색화로 직진한 것은 아니었다. 표현적 충동에 이끌린 앵포르멜을 거쳐 묘법(描法·Ecriture)으로 나아갔고, 특히 동양적 사상을 바탕으로 심화시킨 묘법 회화를 통해 그리는 행위, 그 수행성에 방점을 찍으며 행위보다 평면성에 무게를 둔 서구의 방법론을 넘어선다.
1957년에 제작한 ‘회화(繪畵) No.1’은 한국 최초의 앵포르멜 작품으로 꼽힌다. 구체적인 형상이 없는 이 작품은 6·25전쟁의 대량 학살과 집단 폭력으로 인한 희생, 사회적 부조리 등 작가가 느낀 당대의 불안과 고독을 담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감을 떨어뜨리거나 거친 붓질과 텍스처로 완성한 무질서한 광경은 사뭇 야생적이기까지 하다.
■연필에서 한지로, 3기의 묘법 세계
1960년대 상반기의 ‘원형질’ 시기와 후반기의 ‘유전질’, ‘허상’ 시기를 거쳐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으로 정착한다. 197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50여년간 심화시켜 온 ‘묘법’ 연작으로 끊임없이 단색화의 마스터피스들을 선사하고 있다. 초기 묘법 시리즈를 보면, 결과에 도달하기까지의 제작 과정이 주목된다. 우선 캔버스에 밝은 회색이나 연한 크림색 물감으로 뒤덮고, 그것이 채 마르기 전에 연필로 선을 긋는다. 또 물감으로 지우고, 다시 그 위에 선을 긋는 행위를 되풀이한다. 물렁물렁한 물감은 연필 긋기로 밀려나고 부풀어 오르기도 한다. 연필로 그리고 물감으로 지우는 행위의 반복, 그 결과가 작품이다. 박서보는 “그리는 행위가 곧 아무것도 그리지 않는 것”이라며 이런 행위가 자신을 지우는 과정으로, 몸을 닦는 ‘수신’에 가깝다고 강조한다.
묘법 연작은 흔히 1970년대 초기(연필) 묘법, 1980년대 중기 묘법, 2000년대 이후의 후기(색채) 묘법으로 구분한다. 초·중기의 묘법이 반복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비우고 수신하는 과정에 중점을 뒀다면, 1985년에 색채를 가미한 ‘Ecriture(描法) No.228-85’로 ‘묘법 시즌 2’에서는 체형을 바꾼다. 이 중기의 색채 묘법은 손의 흔적을 강조하는 대신 일정한 간격의 고랑으로 형태를 만들고 풍성한 색감을 강조해 자연과의 합일을 추구하며, 작가의 대표 연작으로 자리매김했다.
다음으로, 후기(색채) 묘법은 ‘Ecriture(描法) No. 120715’(2012)를 통해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작가는 우선 두 달 이상 물에 충분히 불린 한지 세 겹을 캔버스 위에 붙인다. 이 표면이 마르기 전에 흑연 심으로 이뤄진 굵은 연필로 선을 그어 간다. 연필로 긋는 행위로 인해 젖은 한지에는 농부가 논두렁을 갈 때와 마찬가지로 좌우로 밀려 산과 골의 형태가 조성된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물기를 말린 후 스스로 경험한 자연 경관을 담아내기 위해 표면에 아크릴 물감을 덧입힌다. 이렇게 연필로 긋는 행위를 반복해 완성한 작품에는 시간이 덧입혀지고, 작가의 사유로 직조된 리듬이 생성된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곧 수신의 과정
2014년 1월, 작가의 인터뷰는 묘법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내가 1970년대에 일으킨 운동이 단색화 운동이지. 그런데 사실 색으로 보는 게 아니야. 5,000년간의 역사를 가진 우리의 자연관을 통해 봐야 하지.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이야. 분리시켜서 보면 안 돼. 때때로 자연을 서양처럼 이분법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은 자연을 정복, 지배의 대상으로 봐. 하지만 내 작품에서는 내가 자연의 일부분이니까 분리가 안 되는 거야. 동양화에는 원근법이 없어. 그 정신 전통을 회복하기 위해서(회화적으로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그러려면 나를 계속 비워내야 하는 거지. 그렇게 되면 그림은 나를 비워내는 장소이며 도구이며, 그림은 수신의 도구다 이런 게 내 생각이었어.”(월간 ‘퍼블릭아트’ 2014. 1.)
한편 박서보는 색을 사용할 때도 서양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이나 명명법과 궤를 달리한다. ‘주체와 대상’, ‘인간과 자연’ 등의 대립항들로 분류하는 서양식 사고방식 대신 자연친화적인 방식으로 자연을 환기시킨다. 예컨대 색을 일컬을 때도 도식화된 컬러판을 복창하는 대신 주로 자연을 호명하는 일반명사들을 차용해 ‘공기색’, ‘벚꽃색’, ‘유채꽃색’, ‘와인색’ 그리고 ‘홍시색’, ‘단풍색’, ‘황금올리브색’이라 표현했다. 이는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색이 단수가 아니라 대상의 뉘앙스까지 품은 온전하고 종합적인 색(감)이기 때문이고, 관람객의 체험을 전제로 하는 색이기 때문이다. 미술이 곧 방법론임을 주장하는 작가답게, 그는 여러 측면에서 회화에 내재한 기존의 질서들을 전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묘법 연작 초기에 캔버스에 유채물감과 연필로 작업하다가 1980년대 이후 한지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그렇다. 서양의 종이와 달리 색과 빛을 흡수하는 성질의 한지는 ‘물아일체’를 실행하고자 하는 작가의 동양적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매체였다. 나아가 그 위에 흔적을 남기는 방식, 즉 한지가 젖어 있는 동안 연필을 반복적으로 사용해 골을 만들고 음영을 부여한 건 연필이라는 도구를 종이의 원초적인 물질성에 굴복시켰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 결과, 화면에는 연필의 흔적이 아닌 과정과 질서만이 오롯이 남는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인터뷰할 때였다. 이룰 것을 다 이룬 듯 보이는 작가에게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답에는 머뭇거림이 없었다. 글을 쓰고 전시회를 가지고 또 미술관을 지어야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또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치는 비결을 물었다. 선사(禪師) 같은 경구를 귀띔한다.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변하면 추락한다.”
월간 퍼블릭아트 편집장·이미지 국제갤러리 제공
편집=홍예정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