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호등]소방대원의 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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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0일 새벽, 이태원 참사 현장에 급파된 강원 소방대원들의 눈앞은 아비규환이었다. 고막을 찢는 듯한 비명소리와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 차갑게 굳어가는 수십 명의 사망자들. 지옥을 방불케 하는 급박한 현장 속에서 대원들은 한 명이라도 더 살려내겠다는 의지로 온 머릿속이 잠식된 채 뛰어다녔다.

주홍빛 소방복이 온통 땀에 젖어서야 구조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그들에게 쉴 틈도 내주지 않고 찾아온 것은 어김없는 후유증이었다. 모포로 덮인 시신 너머로 술에 취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취객들의 모습. 거친 날숨을 내뱉으며 심폐소생술에 매진하는 대원들을 신기하다는 듯 구경하며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행인들. 임시영안소에 안치된 사망자 휴대전화에 부모님과 지인으로부터 걸려온 수백 통의 부재중 전화. 아비규환의 구조현장 속에서 오감으로 담긴 참상의 기억으로부터 느껴지는 괴리감은 어느새 대원들의 트라우마로 자리 잡았다.

소방청이 발표한 ‘2022년 소방공무원 마음건강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의 소방공무원 5만 4,056명 중 29.8%가 업무상 스트레스 등의 문제로 수면장애를 호소하고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상과 우울 증상을 겪고 있다는 응답률도 전년대비 각각 2.4%, 3.2%씩 증가했다. 극단적 선택 고위험군도 매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치열한 구조현장 속에서 쌓인 육체적 피로와 더불어 일상에서의 정신적 격통까지 감내하는 소방대원들의 어깨는 점점 처져간다.

함구. 입을 굳게 다물고 말하지 아니함(緘口)을 이르는 말이자, 욕된 일을 참고 견딘다는 뜻(含垢)으로도 사용된다. 소방대원들에게 어울리는 단어다. 육체적·정신적 고통에도, 턱없이 부족한 장비와 인력난에도, 구조자의 폭행과 폭언에 노출될 때도, 대형 재난현장 후에 어김없이 불거져 왔던 소방당국 책임론에 대해서도 대원들은 말을 아껴왔다. 국민의 신뢰를 위해 묵묵히 본업에만 매진하는 모습으로 일관하는 과묵함은 어느새 그들의 DNA로 자리 잡았다.

그렇게 과묵했던 소방대원들이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입을 열고 나섰다. 이태원 참사 브리핑 현장에서 마이크를 꽉 쥔 손이 자신도 모르게 덜덜 떨릴 정도로 진심을 다해 구조에 앞장섰던 최성범 용산소방서장과 동료 대원들이 입건되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조용한 분노에 그칠 수 없었던 것이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강원소방지부 소속 대원들은 지난 21일까지 진행된 ‘7만 소방관 지키기 범국민 서명운동’을 통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임무 완수를 위해 헌신하다 입건된 동료 대원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한 움직임에 국민의 동참을 호소했다. 국민의 안위를 살피고자 늘 따뜻하고 부드럽게 다가왔던 그들의 목소리가 울분에 찬 것을 보며 그동안 참아온 괴로움의 강도를 체감할 수 있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질 의무가 있는 소방대원들의 오판이나 안일한 대처로 피해가 더욱 커졌다면 이에 대한 조사와 처벌이 이뤄지는 것이 분명 합당한 처사다. 소방대원들은 잘못에 대한 면죄부가 아닌, ‘더 많이 구하지 못했다’는 좌절감과 후회로 고통스러워할 동료들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청사 밖으로 나선 것이 아닐까? 소방대원들의 이러한 태동이 그들의 함구가 당연한 희생이 아니라는 것을 한국사회가 각성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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