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호등]정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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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 문화부 기자

전차 기관사인 당신은 운전 중 열차의 브레이크가 고장 났음을 깨달았다. 기존 선로에는 5명의 인부가, 비상 선로에는 1명의 인부가 있다고 가정한다. 반드시 선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전제 하에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마이클샌델 교수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 등장하는 ‘트롤리 딜레마’에 대한 설명이다. 해당 딜레마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이야기하는 공리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지금의 사회는 불가피한 소수의 희생으로 다수의 행복을 지키며 발전해왔다. 다만 과거에는 소수와 다수의 차이가 단지 머릿수의 차이였다면 현재는 ‘빈부격차’, ‘지역격차’, ‘세대격차’ 등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나뉘었다. 즉, 두 선로 위 사람의 명수가 아닌 누가 더 많이 가진 사람인지가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장애인, 노인, 아이 등 사회적 약자들은 설 자리를 잃어갔다. 문화도 마찬가지다.

실제 강원도 내 장애인거주시설에 대한 지도 점검에서 전체 시설 가운데 65%가 시정 또는 주의 조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도 내 사회복지 서비스 수요는 증가하지만, 사회복지 최일선에 서 있는 관계자들의 처우는 개선되지 않아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지난 10월에는 춘천시의회가 장애인과 일반인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경계선 지능인 지원에 대한 조례를 복지가 아닌 교육과 연관된다는 이유 등으로 부결 시켰다. 강원도 문화 행사 축소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도 있었으며, 혹여나 행사가 사라질까 두려움에 떠는 이들도 있었다.

이에 민간이 나서 경계선 지능인을 위한 센터를 설립했다. 포럼을 열어 더 나은 강원도 복지를 논하기도 했다. 강원도 곳곳을 다니며 문화의 중요성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처럼 관계자들은 자신의 기관을 이용하고, 문화를 즐기는 시민을 위해 언제나 최선을 다 해왔다. 하지만 도내 기관을 다니며 많은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상황과 불만을 토로할 뿐 근본적 해결을 원하지는 않는 듯 했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해결을 원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노력하겠다”, “최선을 다하겠다” 등을 내뱉는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의 말은 그저 잠깐 반짝할 뿐 임기가 끝나거나, 잦은 인사 이동으로 실질적인 변화는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고 적응해나가기 시작했다. “괜찮아요”, “저희가 힘이 없네요” 등의 말을 하기 까지 얼마나 많은 좌절을 딛고 일어서야 했을까. 목소리를 낸다고 하더라도, 듣지 않을 것이 뻔했다. 듣는다고 하더라도 들어주지 않을 것임이 자명했다. 이들의 마음 속에 ‘더 나은 복지’, ‘더 나은 문화’를 향해 활활 타오르던 혁명의 불빛은 이윽고 그 힘을 다해가고 있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본다. 아마 기관사인 당신은 다수를 살리기 위해 소수를 희생하겠다고 말하며,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덧붙일 것이다. 대다수가 그렇듯 다수를 살렸다는 안도감과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며 스스로를 다독일 것이다. 누군가 당신의 선택을 비난하고 나선다면 당신은 상황 자체를 탓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의 손에 누군가는 희생 당했다. 그러니 거짓없이 대답해달라.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다수가 소수가 되어 희생을 강요 당해야 하는가. 당신들의 마음 속에는 인부 1명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이 존재하긴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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