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심에 오른 것은 모두 세 작품이다.
<문어>는 첫 문단부터 빈틈없이 정교하게 이어지는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예진’도 아니고 ‘세진’도 아니면서 예진이자 세진으로 살아가는 화자의 불안정한 내면을 어항 속 애완 문어의 단조로우면서도 위태로운 삶과 겹쳐놓은 작가의 구성력이 탁월하다. 그러나 결말에 이르러 화자가 집을 떠나기로 결심한 다음 문어를 죽이려다 마음을 바꾸는 과정에서의 심리 변화가 너무 돌연하여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는 점이 아쉽다.
<미라보>는 오래된 모텔 ‘미라보’를 중심으로 여러 사연 있는 인물들의 얽히고설킨 삶을 담담한 필치로 그려낸 작품이다. 그간의 문학적 수련을 짐작하게 하는 작가의 적확하면서도 유려한 문장, 사소한 일화나 잠깐 등장하는 인물도 낭비하지 않고 중심 서사에 기여하도록 이끄는 플롯, 루미를 임신시킨 인물의 정체를 밝히지 않음으로써 독자의 궁금증을 극대화하는 서사의 묘가 미덥다. 다만 낡은 모텔이라는 소설의 공간적 배경과 밑바닥 인생들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진부함이 상기의 많은 장점들로도 결코 상쇄될 수 없다는 점이 뼈아프다.
<국경>은 서사를 이끄는 ‘우리’가 누구이고 우리가 넘으려는 ‘국경’이 어디인지 분명하게 말하지 않는데도 더할 수 없이 분명하게 바로 지금 이곳의 이야기로 읽히는 소설이다. 탈북 혹은 난민이라는 시의적 주제를 정면으로 파고드는 작가의 첨예한 문제의식과 인간에 대한 웅숭깊은 시선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는 와중에도 서사의 힘과 밀도를 고르게 유지하는 필력, 작품의 주제 의식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에피소드들의 유기적인 배치, 흠 잡을 데 없이 매끄러운 구성에도 신뢰가 간다.
심사위원들은 전원일치로 <국경>을 모든 응모작들의 맨 위에 올려놓았다. 압권(壓卷). 부디 그 무게를 잊지 않고 묵묵히 끝까지 작가로서의 삶에 놓인 무수한 ‘국경’들을 넘어 가기 바란다. 당선자께 축하 인사를, 아울러 아깝게 낙선하였으나 무한한 문학적 역량과 가능성을 보여주신 다른 응모자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올린다.